한정남 작가

한정남

한정남

작품수1

모든 작품(1)

울릉도와 독도

울릉도는 30년 전 남편과 포항을 거쳐 2번을 다녀왔다. 하지만 독도를 못 가봐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지난해 가요 홀로 아리랑을 배운 후 부쩍 가고 싶어 문화원 탐방 여행에 합류하였다. 춘천을 04시 30분 출발하여 묵호에서 8시 30분에 씨스타 1호에 승선해서 울릉도 도동항을 향해 달린다. 날씨는 화창한데 파도가 높아 창밖엔 비가 쏟아지는 느낌이다. 배가 넘실넘실 높은 파도를 오르내리니 배속이 울렁울렁 트위스트를 친다. 나는 멀미약을 먹고 눈을 감았다. 뱃멀미는 약을 먹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을 구분하지 않아도, 씨스타는 하나의 커다란 봉우리로 되어 있는 아름다운 바위섬에 가볍게 입도하고 있었다. 울릉도 일주할 수 있는 도로를 달린다. 태하 황목에서 20인승 모노레일 2량이 가파른 산 중턱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거기서부터는 걸어야 했지만 소나무 향 피톤치드를 마시며 올라가니 숨은 가빠도 지루하지 않았다. 넓은 바다와 등대 울릉도 한 자락을 아름답게 사진에 담았다. 해풍을 마음껏 들이키니 속이 뻥 뚫린 기분이다. 되돌아 내려오는 모노레일에서 친환경 전력이 생산된다는 말이 반가웠다. 외딴섬도 자연에서 전기를 만들어 비축해 사용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민속 너와 집에선 산골 마을 60년 전을 회상하며, 해상 비경 으뜸으로 손꼽히는 삼선암으로 달린다. 목욕하러 내려온 세 선녀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 호위 장수와 정을 나누다 늦장을 부린 막내 선녀바위에만 풀이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 흥미로웠다. 해변을 달리는데 일몰이다. 불타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차를 세워놓고 넋 잃은 듯 바라보다 사진을 찍느라 손이 바쁘다. 빨간 하늘과 바다가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며 하얀 태양을 감싸듯 순식간에 검은 바닷속으로 빠져드는 모습까지 보고도 사람들은 아쉬워하다 버스에 탑승해 식당으로 향했다. 다음날 서동에서 9시 10분 씨풀러스에 올랐다. 빛나는 태양과 청색 바닷물 위로 삶의 한 자락 띄워 놓으니 세상 고뇌 사라지고 기쁨이 솟아난다. 작은 섬 이 가까워지니 가슴이 두근두근 내가 드디어 대한민국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독도를 왔구나. “독도는 365일 중 입도할 수 있는 날은 60일 정도란다. 오늘 같은 맑은 날씨를 만나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가이드 말에 폭소가 터졌다.” 어느새 독도에 도착, 다행히 입도에 성공하여 배에서 내리니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날씨와 독도를 지키는 괭이갈매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가이드가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가려면 30분이 모자란다며, 배에서 내리자마자 앞쪽으로 쭉 가서 기념비 포토죤으로 뛰어오란다. 그곳엔 둥근 돌에 태극기 문형과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라 쓰여있다. 한 사람씩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니 정말 시간이 빨리 갔다. 촛대바위, 삼형제 굴바위, 태극기와 이사부길을 찍고 나니 뱃고동이 울리며 승선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벼르고 별러 독도를 왔는데 섬엔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1시간도 아닌 30분 사진만 찍다가 돌아가라니 섭섭했다. 독도의 맑은 공기와 바다향을 마음껏 마시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사진을 찍은 후, 빙 둘러보니 많은 여인들 머리에 꽂힌 쌍 태극기와 손에 손마다 수많은 태극기가 물결처럼 펄럭여도 뭔가 허전했다. 그래서 나는 입속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홀로 아리랑, 저 멀리 동해 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맞으리,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조용히 노래를 부르며 앞산을 올려다보았다. 펄럭이는 대형태극기를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애국심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생각했다.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는 징표를 남겨 일본이 기웃거리지 않게 하려면 많은 국민이 끊임없이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겨 있는데, 괭이갈매기 한 마리 날아와 내 앞 난간에 앉는다. 한쪽 다리를 잃은 갈매기다. 외다리로 서 있어 가슴이 아팠다. “너는 어쩌다 다리를 잃었니? 아픔을 어떻게 참아냈어? 이 작은 섬에서” 갈매기는 뭐라 하고 싶은지 노란 부리에 검고 빨간 띠의 입으로 오물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배가 고픈가? 가방을 뒤져도 먹을 것이 없다. “갈매기야 외다리로 독도를 지켜 주고 있어 고맙다. 네가 나보다 애국자다. 먹을 것을 못 줘 미안해.” 하며 뱃고동 소리에 승선해 돌아왔다. 오후는 대나무가 많다는 죽도 관광이다. 배에서 내려 죽도를 가는데 나선형 계단이 그렇게 많은 줄 모르고 올랐다. 오를수록 대나무 뒤에 숨겨진 계단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다친 다리를 끌며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가쁜 숨을 헉헉 몰아쉬며 죽을힘을 다해 올라갔는데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대나무숲과 청보리 밭을지나 넓은 정원으로 들어갔더니, 유럽풍 저택 같은 산장엔 그 유명한 사연의 주인공 김유곤 씨 혼자 마당을 쓸고 있었다. 부모가 60년 일군 땅에 94~96년 3년간 집을 지어 살다 부모가 돌아가셨다. 혼자 살며 인생극장에 소개된 후 부인을 만나 아들을 낳아 행복한 세 가족이 유튜브에 나왔던 집이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니 “어떻게 오셨어요” 그가 물었다. 환한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이것저것 물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앞서간 일행을 빨리 따라갈 마음에 길만 물어보고 아름다운 정원을 나왔다. 하지만 섬을 한 바퀴 돌아올 일행을 따라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곧바로 전망대로 올라갔다. 공사 중이라 옆에서 넓은 바다와 울릉도 골짜기를 이곳저곳을 감상하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호흡했다. 문득 일행들에게 또 낙오될까 싶어 먼저 내려오는데, 계단이 367개라 했다. 아픈 다리로 왕복 734계단을 오르내렸다고 생각하니 내 다리지만 대견하고 고마워 사랑한다며 만져주었다. 멀리 대형 여객선이 들어오고 있어 하루 몇 명이 울릉도를 오나 물어보았다, 포항에서 오는 배는 900명, 후포는 600명, 강릉, 묵호, 합쳐 하루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한다니 기쁘다. 작은 섬 독도가 외롭지 않고 호황을 이루니 일본이 넘보지 못해 좋은 일이다. 그래도 자연이 더 파계 되지 않게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는 바램도 들었다. 이번 독도 여행은 하늘이 도와줘 울릉도를 다 보고 갈 수 있어 행복한 여행이었다.

한정남2025. 10. 15.
0
4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