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3일 드디어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5월 초 중산리에 숙소를 예약하고 등반하려 했으나 비로 인해 6월초로 연기하고, 6월초에도 또 비가 와서 두 주 후인 이번에 세 번째에야 겨우 등산을 하게 되었다. 천왕봉은 나 같은 범인에게는 함부로 등정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중학교 동창인 우리 셋이 지금까지 다녀온 산 중에서 가장 크고 높은 산으로 그동안 벼르고 별러 도전하였기에 나름 의미가 많은 등산이었다.하긴 지리산이 어떤 산인가? 일단 규모가 엄청나게 큰 산이다. 지리산은 남한 내륙의 최고봉으로 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483㎢의 면적을 지닌 산이다. 오늘 우리 일행이 오른 지리산 최고봉은 1,915m의 천왕봉이고, 그외에도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등 수많은 봉우리를 거느린 웅대한 산이다.3~40년 전 겨울에 노고단을 차로 오른 적이 있었고, 남쪽으로 가는 길에 지리산 주변을 차로만 지나친 적은 여러 번 있었으나 정작 지리산에는 발을 제대로 딛지 않아 지리산은 내게 늘 가보고 싶은 궁금한 산이었다. 그리고 지리산 하면 내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학자 남명 조식이 쓴 시조다.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세라아희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이 시조에서 두류산이 지리산이라며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도 정작 나는 가 보지 못한 지리산을 얘기했으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이 시조에서 얻은 이미지가 지리산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되었었다.이 시조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기대와 설렘으로 등반 하루 전 춘천을 떠나 제천의 악어봉, 영동의 월류봉을 구경하고 산청의 중산리 탐방지원센터 부근에서 민박을 했다.다음날 우리 일행 셋은 아침 6시 20분경 등반을 시작했다. 어제 내리던 비가 그치긴 했으나 날은 개지 않고 구름이 잔뜩 끼어 동서남북도 분간하기 어렵고 어디가 정상부인지 모르겠다.출발 후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자 바로 등산로 입구다. 등산 안내도를 보니 천왕봉 올라가는 길이 5.4km나 된다. 같은 길을 다시 내려오는 것보다는 정상에서 상황을 보아 장터목휴게소로 돌아 내려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며 등반을 시작했다. 등산을 시작한 초입부터 바닥에 돌이 깔린 너덜길이 계속된다. 다행히 나름 정리된 등산로라 큰 불편은 없으나 이런 길을 하루 종일 걸으면 다리에 무리가 많이 갈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숲속으로 들어서니 숲이 우거져 시야가 좁고, 구름이 잔뜩 끼어 더욱 사방을 분간할 수 없다. 그래서 그저 묵묵히 앞으로 앞으로 기어 올라갈 뿐이다. 가끔씩 나타나는 이정표 팻말이 반갑다. 이런 이정표가 없다면 등산길이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얼마나 왔는지,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고, 또 갈림길에서 엉뚱한 길로 가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잘 해 주니 반가운 것이다. 이정표가 있는 곳마다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오늘의 등정을 가늠하며 사진을 찍고 올라갔다.칼바위란 곳을 지났다. 지리산을 등산할 때 갈림길이 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한참 더 올라가다 보니 뒤에서 빠르게 올라오는 주황색을 입은 등산객이 하나 있다. 배낭도 없이 뒷주머니에 검은 비닐로 핸드폰을 싼 것만 있는 홀몸이다. 어찌나 빠르게 오르는지 신기해서 잠시 말을 붙였다. 지리산 날다람쥐란다. 2,500번 넘게 천왕봉을 다녀와서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출연했고 ‘생생정보통’에도 출연했단다. 그 사람을 올려 보내고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정말 지리산 날다람쥐란 분이 있다. 김요섭이란 분이다.한참 후 우리는 계속 오르는데 이분은 벌써 내려온다. 내려 오는 분을 붙들고 이름까지 대니 맞단다. 유명 인사이기에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리고 잠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이름에 크리스천 냄새가 나서 물어보니 이분도 장로란다. 우리 일행도 장로, 선교사, 권사가 있어 잠시 대화를 더 나누다 헤어졌다. 2030년까지 천왕봉 3천 번을 등정할 계획이란다. 천왕봉까지 오르는 5.4km를 왕복으로 2시간 18분에 완주한 것이 최고 기록이란다. 우리는 10시간을 걸려서 다녀왔건만 대단한 체력이다.계속되는 오르막길 구름 속과 숲속을 동시에 걷는다. 주변을 살펴보니 참나무가 낙엽송과 같이 곧고 가늘게 뻗어 있는 곳들이 많다. 강원도에서는 이렇게 가늘고 긴 참나무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은 숲이 울창해서 그런가 보다. 지리산만 하더라도 내가 사는 강원도와는 위도 차가 있어 식생이 좀 다르다. 강원도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도 많다. 물론 강원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래 덩굴도 많고, 산 목련도 많다. 지리산은 높은 곳이라 산목련은 지금이 한창이다. 반가운 마음에 목련꽃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는데 비를 맞고 난 뒤여서일까 향기가 별로 없다. 원래 산목련은 하얀 꽃받침 속에 빨간 색시가 들어 앉은 모양이고, 향기는 짙게 분을 바른 여인의 향기와 같은 꽃인데 향기가 적어 잠시 아쉬웠다.로타리 대피소에 이르니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올라온다. 우리도 버스를 탔으면 지금 이시간에 이곳에 도착했을 텐데 1시간 반이나 먼저 출발했음에도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과 같은 곳에 있다니? 3.4km를 힘겹게 걸어온 것을 아쉽다고 해야 할지? 그렇지만 버스에서 내린 다음 여기까지 얼마 되지 않은 길을 올라온 여자 등산객 한 분은 몹시 힘겨워한다. 저 상태에서 과연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을 잠시 해 본다.좀더 올라가니 법계사가 나온다. 거기서 물을 보충했는데, 날이 흐린데다 그리 덥지 않아 2시간 남짓 걸었음에도 마신 물이 얼마 되지 않는다. 비 온 뒤라 골짜기 물을 마실 곳도 많으니 물 걱정 말라던 숙소 주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남은 물을 버리고 다시 병에 새 물을 가득 채웠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10시간 넘게 걸었음에도 마신 물이 작은 물병 3개도 못 되는 것 같다.해발 고도가 1,400m를 넘는 법계사를 지나니 식생의 변화도 눈에 띈다. 바람도 많이 불며 제법 춥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 1,400m가 넘는 산은 많지 않다. 그런데 아직도 500m는 더 올라가야 한다. 어떤 산은 5~600m도 험하고 어려운데 아직도 큰 산 하나를 더 올라야 하는 먼 산길이다. 그래도 각오하고 온 길이라 꾸준히 오르고 또 오르면 정상에 오를 것이란 생각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사방이 구름이라 뵈는 게 없으니 오르는데 마음을 빼앗는 것이 없어 오히려 오르는 일에만 더 열심을 내게 되니 이것도 괜찮아 보인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정상의 분위기를 물으니 잔뜩 흐려 곰탕이라고 한다. 곰탕이라, 재미있는 비유다. 정상에 올랐을 때 사방이 온통 구름이어서 뵈는 게 없다면 얼마나 실망일까를 걱정하며 오르는데, 그 예측이 맞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점점 강해진다.얼마쯤 올랐을까? 그간 오른 시간을 재 보니 5시간이 거의 다 돼 간다. 멀지 않은 앞에 구름 속에 봉우리 셋이 보인다. 저기가 정상 같다. 긴 계단을 오르니 정말 드디어 정상이다.정상에 사람이 많진 않았으나 그래도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몇 순번 기다려야 할 정도는 되었다. 바람이 엄청나게 세서 꽤 춥고 모자도 계속 벗겨진다. 우아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래도 표지석 앞뒤로 독사진, 단체 사진 등을 골고루 찍고 나중에 편집을 위해 표지석만도 따로 사진을 찍었다. 날씨로 인해 정상 위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은 길게 허락되지 않았다.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구름뿐 내가 발을 디딘 정상 부근만 조금 보이고 사방은 구름 속이다. 정상에서 오만하게 사방을 굽어보고 싶은 욕심을 하늘이 알았기 때문일까?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정상에서 2~30여 미터쯤 되는 곳으로 내려오니 바람도 약한 좀 평평한 곳이 있는데, 지리산에 대한 안내판도 4개가 있다. 그 중 지리산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 두류산, 방장산에 대한 소개도 있다. 정오가 거의 다 되었으나 춥고 바람이 세서 정상 부근에서는 점심을 먹을 수가 없었다. 좀더 하산하다가 먹기로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올라온 길을 그대로 다시 내려가는 것은 넓고 큰 지리산의 지극히 일부만 보는 것 같아 하산길은 올라온 길과 달리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제석봉과 장터목휴게소, 유암폭포 있는 쪽으로 길을 잡았다. 올라온 길보다는 1.7km 먼 길이다. 그러다 보니 하산 시간도 등산 시간과 같이 5시간 정도로 비슷했다.정상부 조금 아래 바람이 적은 우묵한 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제석봉 부근에 오니 구상나무 고사목이 구름 속에 신비한 자태로 서 있다. 주변의 나무와 풀들도 구름 속에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좀더 머물고 감상하고 싶으나, 갈 길도 멀고 날씨도 춥고 시야도 지극히 제한되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계속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너덜길과 가파른 계단들, 통천문 등을 거쳐 장터목 휴게소를 지나는데 급경사가 여러 곳 있어 고도를 급격하게 낮춘다. 내려올수록 숲이 우거지고 나무들도 정상 부근과는 달리 점점 커지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등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고도에 따라, 위도에 따라 식생의 변화를 확연하게 느끼게 해 주는 산들이 있는데 이런 산들은 대개 높은 산들이다.내려오는 길에 지난 곳들은 통천문, 장터목대피소, 유암폭포, 칼바위 등인데 정상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 1.7km이고, 장터목 대피소에서 칼바위까지가 4km 정도 되는데 지루하고 길었다. 칼바위까지 오니 아까 오를 때 지났던 곳이라 반갑기도 하였지만, 아직도 남을 거리가 1.3km란다. 다 왔다 싶으면서도 지쳐서 무릎이 무거운 체중을 감당하느라 아프다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1.3km가 꽤 길게 느껴진다. 이쯤 되면 다리에서 쥐가 날 뻔한데 다행이 등산을 시작할 때 마그네슘을 마셔 그런지 피곤하긴 하지만 쥐는 나지 않아 좋았다. 게다가 등산 스틱이 얼마나 몸에 유익한지를 이번에 또 다시 실감게 되었다.10시간 넘게 걸려 처음 출발한 곳으로 오니 몸음 피곤하지만 성취감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일찍이 휴정 대사는 ‘지리산은 웅장하나 화려하지 않고, 금강산은 화려하나 웅장하지 않고, 묘향산은 웅장하고도 화려하다’ 했다. 웅장한 지리산은 주변만 돌았지 직접 올라 보지 못해 늘 궁금하면서도 오르고 싶은 산이었는데, 이렇게 천왕봉을 다녀오게 되니 소원 성취 하나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지리산 정상에 오르고 싶은 사모하는 마음과, 높은 산을 오랜 시간이 걸려야 다녀올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단단히 하고 왔더니 잘 다녀오긴 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 웅장함을 보지 못하고 구름 속에서만 놀다 온 것 같아 아쉬움도 한편 크다. 지리산에 다녀왔으면서도 지리산을 보지 못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의 아이러니다. 그리고 조식의 시조에서 얻은 이미지를 떠 올릴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를 늘 궁금해 했는데 그 시조의 이미지는 전혀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한편으론 언제 다시 지리산에 오를지 모르지만 이런 아쉬움이 지리산에 대한 신비감을 계속 간직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남들은 2박 3일에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종주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새벽에 올라가 정상에서 아침 일출을 보고, 운해를 감상한다고 하는데, 기껏 하루만에 정상을 다녀오고 뭔가 큰일 한 것 같이 자랑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긴 오후 늦게 우리가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올라가는 사람이 몇이 있어 물어보니 일박하며 별도 보고 아침 일출도 보려고 일부러 늦게 올라간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지리산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리라.한라산을 물론 지리산까지 등반했으니 이제 다른 산은 쉽지 않을까 자위해 본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이번이 65번째였다. 이제 나머지 산들은 1,400m 이상 2군데, 1,000m 이상은 7~8 군데밖에 없어 어떤 산을 간다 해도 크게 걱정이 안 된다. 지금까지 다녀온 산 중에서 힘들었다고 생각되는 산은 오히려 지리산보다 낮은 설악산, 월악산, 두타산 등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들 산은 사전 조사나 마음의 준비가 지리산보다 덜 된 상태에서 다녀왔기 때문에 힘들었는지도 모른다.아무튼 일부이지만 웅장한 지리산도 보았고, 15년 전쯤엔 화려한 금강산도 다녀왔으니 이제 이 둘을 다 갖춘 묘향산도 가 보고 싶은데 과연 죽기 전에 이게 가능할까? 이제 집에 가면 아직 오르지 못한 나머지 산들을 언제 어디부터 가 볼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푹 쉬고 싶다.지리산을 다녀오며 산의 첫 글자를 이용하여 시조로 느낌을 정리해 본다.지리산은 영산인가 날씨로 길 막더니이렇게 세 번째야 등반을 허락받다.산 중에 산다운 산이니 다른 산은 쉽겠네. 위의 내용을 주고 AI에게도 시조를 써 달랬더니 이렇게 써 준다. 지척을 분간 못 할 짙은 구름 헤치면서리본 맨 이정표에 고단한 몸 의지하네산마루 거센 바람도 그 웅장함 못 덮네 첫 글자를 이용하지 말고 그냥 시조로 써 달랬더니 또 이렇게 써 준다. 세 번을 벼르고서 구름 속을 오르니천왕봉 짙은 안개 세속 시름 덮어주네가려진 웅장한 자태 가슴 깊이 담노라 제법이다.
제주도에 가서 힐링하고 오라고 큰딸이 비행기 티켓과 감성숙소를 잡아주어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큰딸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게 남편 그리고 막내딸과 함께 6월의 끝자락에 셋이서 설레는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한다. 기대에 부풀어 공항버스를 타고 김포에 도착하여 우동으로 점심을 간단히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도까지는 비행시간이 짧아서 이륙하는가 싶더니 금세 착륙 방송이 나왔다. 제주공항에 도착 후 롯데렌터카에 들러 렌트한 차를 몰고 고기국수를 먹으러 갔다. 김포에서의 간단한 요기로는 부족해 다시 고기국수 멸치국수로 배를 채우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향하는데 추적 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여행 시작과 함께 비가 내리는 것은 솔직히 달갑지 않은 일이다. 여행의 기분이 가라앉지 않기를 바라며 일단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비내리는 숙소는 정말 힐링하기 좋은 감성 숙소였다. 늘 북적이는 콘도에서만 지내다 프라이빗한 개인 풀빌라 형식의 숙소에 오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각자 침대 하나씩 차지하고 조금 쉬다가 바닷가로 향했다. 코끝을 스치는 비릿하지만 정겨운 바닷 내음, 그리고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날 들뜨게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제주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갈치구이 집으로 향했다. 갈치 전문점이라 갈치를 통째로 구어 와서 가시를 발라주는데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입안 가득 퍼지는 갈치맛을 만끽하며 맛있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와서 쉬면서 문득 아, 이런게 진짜 행복이구나! 라는 생각에 함께 오지 못한 가족들이 떠올랐다. 이 좋은 풍경과 맛을 함께 나누지 못한 애틋한 마음이 밀려왔다. 다음날 아침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아침은 제주도의 토속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고사리를 갈아 넣고 육개장처럼 끓인 음식인데 내 입맛에는 그저 그랬다. 제주도에서는 잔칫날 돼지를 잡아서 순댓국처럼 내장이랑 고사리를 넣고 푹 고아서 손님을 대접한다고 한다고 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먹었다 옥돔 구이를 같이 시켜서 그나마 옥돔이랑 먹을 수 있었다. 여행에서 그 여행지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오늘 아침은 기대했던 마음이 컸었는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제주도 하면 오름 하나는 가봐야 한다고 해서 오름을 가기로 했는데, 비가 와서 오름 정상까지 차가 갈 수 있는, 군산 오름을 택했다. 하지만 비로 인한 운무로 전경을 볼 수는 없고 정승처럼 서 있는 산들의 실루엣만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한라산도 보인다고 한다. 길이 외길이라 운전하기가 힘들어 다시 오고 싶진 않았다. 날씨 탓에 기라앉은 기분을 달래려 다음 목적지를 고민하다가 답다니 수국밭으로 향했다. 빗방울을 머금어 더욱 싱그럽고 탐스럽게 피어난 수국과 함께 사진을 찍고, 녹차밭이 있는 오설록으로 향했다. 제주도에 오면 항상 들르는 곳이 오설록이다. 통창 너머로 초록빛 차밭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고 워낙 유명한 곳이라 외국인들도 많다. 그 중에 중국인이 유독 많았다. 선물을 사려고 늘어진 줄 속에서 오히려 다른 나라를 관광하며 설레어 하며 줄 서 있던 내가 떠올랐다. 우리에겐 익숙한 것들이 관광객들에게는 설렘과 즐거움일 것이란 것이 그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녹차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주문하고 풍경을 구경했다. 녹차 아이스크림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차를 마시고 나와 녹차밭에서 사진도 찍고 녹차잎의 초록을 만끽했다. 아침식사와 오름에서의 불만이 많이 사라졌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봉순이네 흑돼지 집을 찾아가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이곳은 주인이 직접 고기를 구워주어서 편했다. 고기도 정말 맛있었다. 딸이 운전해 주어서 한라산 소주를 곁들이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만찬이었다. 제주도의 유명한 흑돼지, 여행에서 느끼는 먹는 즐거움을 이를 통해 맛보았다.아침부터 강행군을 해서 그런지 피곤하여 일단 숙소로 와서 쉬기로 했다. 펜션 한 켠에 자리잡은 자쿠지에 몸을 담그니, 새소리에 귀가 즐겁고 수국향의 향긋한 내음에 피로가 다 풀리는 듯했다. 그것도 잠깐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가야 하는데 귀찮아져서 회를 시켰다.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역시 회는 바닷내음이 풍기는 바닷가에서 먹어야 제맛인 듯하다. 다음날 섭지코지를 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성산일출봉 부근에서 옥돔 생선과 성게 미역국을 먹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였다. 기분 좋게 섭지코지에 오르며 거의 5년 전에 큰 딸과 와서 귀걸이를 잃어버려 찾던 그곳에서 사진도 찍고 맨 꼭대기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남편과 딸과 함께 다음 장소를 의논했다. 우도로 가기로 하고 신이 나서 딸과 나는 넒은 위에서자 벅차오르는 신바람을 주체할 수 없어 딸과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멀리서 남편이 덩달아 리듬을 맞추어 덩실거리고 주변의 관광객들도 함께 즐거워했다. 아마도 딸과 남편과 함께한 섭지코지에서의 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절도 지어진다. 멀리서 우도가 오라고 손짓을 하는 듯했다. 우린 배에 차를 싣고 우도로 향했다. 차로 한 바퀴 돌며 해물 칼국수도 먹고 멋진 해변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도 남겼다. 우도에는 자전거를 타고 데이트하는 청춘남녀들이 가득했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라는 생각에 잠시 멍하게 그들을 보고 있었다. 우도에서 일주일만 쉬고 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배 시간이 있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우도를 나와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와서 쉬다가 딱새우가 맛있다고 하여 딱새우를 먹으러 갔다. 가격은 좀 비쌌으나 입안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는 맛에 맛있게 먹고 운전 때문에 술을 못 마시는 딸에게 미안해서 딱새우를 포장을 해서 숙소에 와서 한 잔을 더 했다. 내일이면 이제 집으로 가야 하는 아쉬운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에코랜드를 갔다. 에코랜드 테마파크는 철도 컨셉의 생태관광지로, 기차를 타고 각기 다른 테마의 역에 내려 제주의 자연을 즐기는 대표적인 명소이다. 호수 풍차, 라벤더 정원이 있고 그 안에 호텔도 있었다. 규모가 기차로 이동할 정도로 넓었다. 에코랜드 관광을 마친 후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에 와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왔다.푹 쉬고 오라고 잡아준 감성숙소는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우린 빡센 패키지같은 여행을 했다. 한 곳에 앉아 느긋하게 쉬지는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끼니마다 맛나는 음식을 찾아 다녔다. 나는 성격 탓인지 신체가 아직도 건강해서인지 아직도 가만히 쉬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그리고 예전에는 나와 남편의 보호로 다니던 여행이 이젠 딸의 보호로 여행을 다니니 세월의 야속함인가 마음이 씁쓸하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의젓하게 잘 자란 딸을 보면 흐뭇하다. 여행이 끝나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된다. 또 다시 일본 북해도 여행을 계획하며 추억을 많이 남겨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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