雁列齊飛夕麗中 朝銀世界地天同 野田綠草亡渝黑 山谷丹楓壯益紅 春夏成長敎茂盛 秋冬除止令新夢 高僧不可親刪髮 萬事强要自意終
기러기 노을 속에 열 지어 날더니 아침엔 천하가 온통 은세계가 되었네 들녘은 풀들 시들어 온통 거무칙칙하건만 산에는 단풍 들어 울긋불긋 곱기만 하구나 봄 여름 무성히 자라나 잘나가던 청춘 시절도 가을 겨울엔 다 지우고 새 세상 꿈꾸라 하네 어떤 고승이 제 머리 제가 깎던가! 세상만사 자의 반 타의 반인 것을
작가의 말
이 시는 자연의 순환을 통해 인생의 무상과 깨달음을 그린 작품입니다. 기러기 떼가 떠난 하늘 아래, 세상은 하룻밤 사이에 은빛으로 변합니다. 모든 생명이 시들어가지만, 산의 단풍만은 마지막 불꽃처럼 찬란하지요. “봄·여름의 청춘이 가을·겨울에 지워진다”는 구절은 삶의 쇠락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전환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두 구절 — “어떤 고승이 제 머리 제가 깎던가! 세상만사 자의 반 타의 반인 것을” — 여기엔 인간 존재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삶의 길은 스스로 선택한 듯 보이지만, 결국 자연의 흐름 속에 맡겨진 운명이기도 하지요.
나는 이 시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슬픔이 아니라 평화로 받아들이는 마음, 즉 자연과 하나 되는 깨달음의 고요한 순간을 그리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