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만족 봄나들이 야외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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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추모 89주기를 며칠 앞둔 화창한 봄날, 김유정 문학촌에서 수필 반 야외수업을 하였다. 이곳은 작년 늦가을쯤 근처에 있는 ’레일바이크‘를 타러 왔다가 잠시 들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스산한 바람에 바싹 마른 낙엽이 구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치 망한 고려의 도읍지를 돌아보는 길재처럼 세월의 무상함을 생각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시작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날씨 기가 막히죠?”

“오늘 나오길 너무 잘했어요”

서로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다 오셨네요. 저기 보이는 산 이름 아시죠? ’금병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지형이 ’시루‘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곳을 ’실레마을‘이라 합니다. 김유정이 고향인 이곳에 와서 3년여 동안 투병하며 남긴 30여 편의 소설 중 1/3 정도가 이 마을을 실제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부를 때 ’문학관‘보다 ’문학촌‘이 더 적합한 표현입니다.”

실레마을 전체가 김유정의 문학 산실이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빙그르르 마을 정경을 눈에 담아보았다. 평화롭고 안온한 느낌이었다.

나의 오감을 활짝 열어준 일등 공신은 동백꽃이었다.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노란색 꽃들을 뭉뚱그려 동백꽃이라고 부르자, K님이 다가와 동백꽃과 산수유를 구별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꽃잎을 보세요. 산수유는 동백꽃보다 더 예술적으로 생겼어요. 보세요, 엎어놓으면 화려한 샹들리에 같죠? 동백꽃은 자세히 보세요. 뭉쳐있죠? 생강나무라고도 해요. 나무껍질도 좀 보세요··· 제주 빨간 동백꽃하고는 완전히 다른 꽃이죠”

여기저기서 깨우침의 감탄사가 들렸다. 지식의 향연이 뭐 별거냐? 싶었다. 나는 동백꽃을 코에 밀착시키고 느린 호흡으로 잠잠이 있어 보았다. ‘알싸한 냄새’와 함께 아찔했다던 그 시절, 그들의 봄에 이르고 싶어졌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우리는 생가 앞 소나무 아래에 삼삼오오 앉았다. 나직한 돌담을 두른 정원은 그냥 앉아만 있어도 감성이 열리는 멋진 교실이었다. 선생님은 소설의 주요 장면 하나하나를 징검다리 삼아 우리를 작품 속으로 안내하셨다.

“걱실걱실히 일 잘하고 예쁜 점순이, 툽툽하고 감 참외 같은 점순이, 내 편인지 장인 편인지 헷갈리게 하는 밀당의 고수 점순이, 따끈한 감자를 건네주면서도 자존심을 긁어대는 얄미운 점순이, 닭싸움으로 화를 돋우는 투박한 사랑꾼 점순이···”

그녀들의 풋풋한 얼굴이 궁금해졌다.

 

“동백꽃 점순이와 봄봄 점순이가 실레마을에서 같이 살았을까? 다른 소설에 같은 이름을 쓴 이유는? 점순이가 바로 요즘 핫한 테토녀 원조네! 100년 전 소설에서 에겐남과의 매칭이라··· 김유정 천재 맞네! 철벽같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어리숙한 남자와 야무진 점순이라니, 이런 역설은 암울한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적 장치? 김유정의 풍자와 해학? 그냥 음양의 이치?···”

나는 어느새 심각하게 산만한 학생이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아지랑이처럼 아련해졌다. 학생 시절이었다면 최소 꿀밤 몇 대 감이었다.

“환갑 넘어 듣는 문학 수업이 요런 맛이라니!” 점순이만으로도 생각이 술술 열리는 재미가 마치 ’종합 과일 맛 캔디‘ 한 통을 열어서 먹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생가 구석구석을 들여다보았다. 몇몇 분들은 어렸을 적 직접 쓰던 뒤주를 부엌에서 발견하고는 들뜬 소리로 반가워하셨다. 어릴 적 외가댁 곳간에 걸려있었던 알 수 없는 물건들도 이제보니 대략 쓰임새가 짐작되었다. 방학마다 달려오는 손녀 반기시며 곶감, 홍시, 과즐 내오시던 외할머니 냄새가 여기도 있었다. 까마득한 줄 알았던 100여 년 전 시간이 우리와 이렇게 잇대어져 있다니···. 약간의 숙연함을 가지고 전시관까지 알뜰하게 돌아본 후, 두부전골로 함께 점심을 먹고, 선생님이 사주신 차까지 마시고 오늘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김유정역 쪽으로 혼자 걸어보았다. 선생님 설명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람 이름을 역명으로 쓴 곳이라 한다. 편리한 접근성 덕에 김유정 문학촌을 찾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라고 하셨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가까운 곳에 역이 있었다.

 

기찻길 옆 의자에 앉아, 전시관에서 채 읽지 못해 찍어만 두었던 ’필승 前‘을 읽어보았다. 김유정이 절친에게 쓴 편지였는데 극심한 병마와 가난이 애절하게 담겨있었다. 그는 이 편지를 쓴 지 10여 일 만에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인생이 비극적이지만은 않은 것은, 그 편지의 수신자 안회남(필승)과의 빛나는 우정 때문일 것이다. 안회남은 김유정의 사후, 작품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둘은 국권상실의 암울한 시대를 살며, 지성인으로서의 고뇌와 울분을 나누며 우정을 다졌을 것이다. 안회남은 김유정이 조실부모 후 겪었을 원초적 외로움과 실연의 고통까지 들여다본 인생 친구이자 문학 동지였을 것이다. 이런 친구였기에 김유정 작품의 풍자와 해학의 참맛을 알아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다.

김유정의 인생은 짧았지만, 그의 문학촌을 찾는 걸음은 세대를 넘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이어지는 걸음걸음이 저마다의 감칠맛 나는 사색의 길로 향하기를 기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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