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한 가지만 가질 수 있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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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구하러 남대문시장을 가기로 했다. 전철을 타고 가는 시간만도 족히 2시간 이상 걸릴 것 같다. 그 시간을 우두커니 있는 건 내키지 않는다. 뜨개를 뜰까? 팬플루트를 배우고 있으니 악보 외우기를 할까? 옆 사람과 이야기도 나눠야 할지 모른다. 한 번에 세 가지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때 떠오른 게 지인의 목도리다. 레이스 실로 뜬 여름 목도리가 여간 귀티나 보이지 않았었다. 그래도 떠볼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생각하니 악보를 외우는 일은 책을 보는 것과 같으니 우선 멀미가 염려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실과 바늘, 악보를 준비해서 전철역으로 갔다.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악보를 놓고 계이름을 흥얼거렸다.

전철에 올라 자리를 잡으니 내 짝꿍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인지 두런두런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나는 슬그머니 실과 바늘을 끄집어냈다.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유튜브로 여름 목도리 뜨기를 찾는다. 그리고 가장 간단한 방법을 택해 뜨기를 시작했다. 전철에서도 와이파이가 되니 참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흡족하다.

속으로는 악보를 외우고 귀로 아주머니 얘기를 들으며 뜨개질을 한다. 그야말로 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거다. 하지만 곧 악보 외우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봐도 봐도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다. 뜨개질에도 문제가 생겼다. 텃밭 농사를 지어 나누는 재미로 산다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뜨고 있던 무늬가 엉뚱해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뜬 것을 풀고 다시 뜨고 있자니 상봉역이다. 거기서 내려 두어 번 전철을 바꾸어 타야 했다. 그렇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중인데 갑자기 고단함이 몰려왔다. 크게 힘쓴 일도 아니었고 전철을 갈아 탓을 뿐인데 몹시 피곤하다. 이것도 나이 탓일까? 그래. 맞는 것 같다, 이 나이에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려고 했으니 에너지가 고갈될 일이었지 싶다. 하지만 여기서 잠들면 내리는 역을 놓칠세라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남대문시장에 도착했다. 물건 살 곳을 미리 정하고 온 것이 아니다 보니 일일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단순히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러 온 것도 아니다. 다음에는 이곳으로 직접 오지 않고도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도록 상점과 물건을 꼼꼼히 살피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자기 것 이외엔 대답도 하지 않는 야박한 상인의 인심에 마음을 조금 다쳤다.

아침에 나선 길을 되짚어 돌아오며 여름 목도리 하나 완성했다. 그 목도리를 눈높이로 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앞으로는 무조건 한 가지만 하기로 한다. 80대의 나이에는 하루의 속도가 80km로 달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들면 그만큼 행동이 느려지기 때문에 하루해가 그만큼 빨리 간다는 이야기다. 이젠 시간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욕심도 부리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한 가지씩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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