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7일 춘천문화원 수필창작반에서 김유정 문학촌에 다녀왔다. 이 문학촌은 춘천이 낳은 한국의 대표적 단편 소설가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가 있던 증리에 1만평도 넘는 넓은 대지를 확보하고 여기에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 및 전시관 등 여러 부속 건물을 지어 2002년 8월 6일에 설립한 문학촌이다. 그런데 문학관이라 하지 않고 문학촌이라 명명한 것은 규모가 큰 것도 있지만 생가터가 있는 증리 전체가 김유정 문학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여러 소설 속에 그곳 지명, 인명 등이 생생히 살아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문학촌 앞의 신남역도 김유정역으로 개명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 인명으로 역명을 삼은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에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김유정 문학전집-전집이라야 달랑 한 권이지만-도 그때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김유정을 좋아했다. 더구나 내가 국어 선생이 되어 김유정의 작품을 가르칠 때는 더욱 신나서 김유정과 작품에 대해 열심히 가르쳤다. 그리고 30년쯤 전인 1990년대 중반, 문학촌이 개관하기 전 이 마을에 찾아와 당시까지 생존해 계시던 90세가 다 된, 김유정의 금병의숙 제자와 만나 당시의 여러 회고담을 듣기도 했었다.
퇴직 후 김유정 문학촌에서 해설사를 모집한다기에 ‘이건 내가 해야 하고, 나를 위해 준비된 거야’ 하는, 마치 어떤 사명감 같은 것으로 지원을 했고, 6개월 정도 연수를 받은 후 해설사가 되었다. 해설사를 한 지 1년도 못 되어 코로나 19가 터져 그만 해설사 노릇도 얼마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문학촌에서 해설사를 좀 했기에 김유정과 문학촌에 대해 애착이 많아 우리 수필창작반원들에게는 더욱더 소개하고 해설도 하고 싶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시나 수필 등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김유정 문학촌은 꼭 탐방했으면 하는 바람은 나 같은 사람뿐 아니라 김유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수필반원들과 시기상 굳이 이렇게 3월말을 택해 탐방하고자 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이때가 중부지방의 동백꽃(생강나무)이 피는 시기이고, 둘째는 3월 29일이 김유정이 타계한 날이기 때문이다.
몇 주 전부터 회원들에게 공지를 하고 탐방 날을 기다렸다. 3일 전에는 사전 답사도 왔었다. 아침에 비가 살짝 내린다. 남부지방의 산불로 전국이 불안한 때라 탐방에 지장이 있더라도 비가 많이 왔으면 하는 바람은 우산을 갖고 온 모두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리는 비는 우리의 탐방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적었다.
문학촌 입구와 동상 앞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기념관 안으로 들어섰다. 대문을 들어서자 바로 기념관 앞 뜰에서부터 해설을 시작했다. 동백꽃 속 점순이와 수탉의 싸움을 형상화한 조각상과 이를 바라보는 김유정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건물들과 문학촌의 유래 등을 간단히 소개한 후 정자로 올라가 둥그렇게 둘러앉은 후 해설을 했다. 김유정의 연보와 작품 세계, 그리고 동백꽃과 봄∙봄 등 몇몇 작품을 해설하였다.
정자에서 다시 생가터로 올라가 봄봄의 작품을 형상화한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사방을 둘러 본 후 복원된 생가로 들어가 김유정의 생애 등을 더 얘기하고, 김유정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름, 방추, 짜장, 들병이, 낙자없다 등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어휘들로 퀴즈를 내고 얘기를 나누다 기념관과 이야기집을 둘러본 후 주차장으로 내려와 단체 사진을 찍고 탐방을 마쳤다.
탐방 후 점심과 차를 나누는 가운데 다음 기회에는 다른 문학관을 또 탐방하자는 즉석 제의도 있었고 이곳 저곳 추천해 주기도 했다.
예전에 해설을 할 때 시간에 쫓겨 해설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광객으로 온 사람들은 해설하기가 힘들다. 집중도 잘 하지 않고 짧은 시간에 그냥 훑어보고 나가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서 그렇다. 그러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오면 좀 다르다. 포천에서 문학을 하는 팀이 왔을 때가 기억난다. 30여 명이 왔는데 관심도 많고 집중해서 잘 들어주어 해설하는 나도 신이 났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듣는 사람도 관심이 많고 시간적 여유도 있어 해설을 하다 보니 호응도 좋고 집중도 잘해 주어 해설사로서의 보람도 많이 느꼈다.
해설을 할 때 대개 문학촌을 간단히 소개하고 김유정의 생애와 연보, 그리고 작품과 작품의 특징 등을 주 내용으로 해설한다. 그런데 나는 해설할 때 빼놓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동백꽃과 관련해서 선입견 하나를 없애고 가라는 것이다. 기념관 앞과 뜰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노란 동백꽃이 소설 속 그 동백이라고. 몇십 년 전 발간된 김유정 소설집 표지에 그려진 동백꽃은 소설 속 노란 동백꽃과 달리 남방의 빨간 색 동백으로 그려져 있다. 남부의 동백꽃은 빨간 동백이지만 중부지방에는 노란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이라고도 부른다. 잘 모르는 사람은 모양이 비슷한 산수유 꽃과 혼동하거나 산수유로 아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문학촌 안에는 산수유 나무도 일부러 심은 모양이다. 산수유도 동백과 피는 시기가 같아서 몇 그루가 잘 피어있었다. 이번에도 예의 그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소양강 처녀 노래 속 동백이란 단어가 나오는 부분을 노래로 하며 이해를 도왔다. 물론 이것도 나이가 좀 지긋한 분들만 동의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만 해도 어렸을 적 노란 동백꽃만 동백으로 알다가 빨간 동백을 동백이라고 하는데 대해 적잖이 거부감을 느꼈었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의 무서움이다.
김태희가 부른, 춘천시의 시가(市歌) 같은 소양강 처녀 2철 첫머리는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이다. 김유정과 소양강 처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노랫말과 김유정의 생애는 어찌도 이리 일치할까? 김유정 사후 88년만에, 동백꽃이 피는 시기에 김유정 문학촌에 가서 그의 유품 하나 없는 문학촌에서, 필승에게 보낸 처절한 편지의 답도 받지 못하고 간 김유정이 가슴 아리도록 슬프고 그립다.
김유정의 소설 속 이야기는 요즘 말로 웃픈 이야기들이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서른 살도 못 채우고 병마와 싸우다 죽어간 소설가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못 다한 웃음을 주는 슬픈 이야기를, 문학촌을 방문한 우리들에게 지금도 들려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