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 후에도 머무는 향기
소청자
모든 꽃은 피어나면 언젠가는 지기 마련이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오월의 장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찬란했던 계절이 지나고 나면 붉은 꽃잎들은 하나둘 대지 위로 툭툭 떨어지고, 대문을 가득 채웠던 화려한 왕국은 잠시 빛을 바랜다.
하지만 우리 집 대문의 장미만큼은 꽃이 진 후에도 결코 시들지 않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외형의 화려함을 넘어선, 영원히 지지 않는 가족들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젊은 날, 두 손을 걷어붙이고 네 식구가 힘을 합쳐 지었던 첫 집. 그 집 대문에 남편이 우리 가족을 위해 장미를 심어주었을 때, 우리는 아주 먼 미래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꽃이 피는 찬란한 순간뿐만 아니라, 꽃이 지고 겨울이 찾아오는 고단한 계절까지도 함께 나누겠다는 묵묵한 다짐이 그 심어짐 속에 있었다.
살아가면서 늘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때로는 가뭄처럼 가슴이 타들어 가는 날도 있었고, 매서운 서리처럼 차가운 시련이 우리 가정을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대문의 장미를 보며 우리가 처음 집을 짓던 그 마음을, 우리가족은 서로를 가장 귀하게 여기기로 했던 그 약속을 기억해 냈다.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한 번도 외롭게 두지 않았다. 장미가 피어날 때는 함께 기뻐해 주었고, 장미가 지고 앙상한 가시 줄기만 남을 때면 내 거칠어진 손을 꼭 잡아주며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꽃이 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우리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눈가에 주름이 늘고 머리가 희어지고 있다.
젊은 날의 화려했던 모습은 조금씩 옅어질지 몰라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속의 사랑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짙고 그윽해진다. 그것은 마치 장미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가을의 열매와도 같다.
그래서 나는 오월의 장미가 지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꽃잎은 비록 바람에 날려 사라질지라도, 남편이 가족을 위해 그 집을 짓고 대문에 사랑을 심어주었던 그 본질적인 기억은 우리 삶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꽃이 진 대문 앞을 지나갈 때도 내 코끝에는 여전히 다정한 장미 향기가 맴돈다. 그것은 남편의 변함없는 배려와 존중이 만들어낸 인생의 향기다.
나를 세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 주는 그이가 있기에, 내 인생은 언제나 오월의 축제 속에 있다. 우리가 함께 지은 이 집에서, 남편의 사랑을 자양분 삼아 나는 매일 장미처럼 새롭게 피어난다.
설령 세월이 흘러 세상의 모든 계절이 바뀐다 해도, 우리 집 대문에 새겨졌던 “당신은 내 삶의 오월의 여왕이니까”라고 해 주던 그이의 사랑과 아이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오월의 여왕으로 우리와 함께 삶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