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같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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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발걸음이 가볍다. 남들은 처가 식구들과의 만남이 조금은 서먹하거나 부담스럽다는데, 나에게는 이곳이 또 다른 나의 무대이자 놀이터다. 대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내 눈은 벌써 바쁘게 움직인다. 이번에는 어디를 고쳐볼까, 어떤 낡은 것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설렘 때문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처가집 곳곳에는 이미 나의 땀방울과 손길이 깃들어 있다. 삐걱거리던 화장실 세면대와 물이 새던 샤워기를 교체하고, 어두웠던 계단의 형광등을 환하게 밝혔다. 뜨거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칠했던 옥상과 외벽의 방수 페인트, 정성스레 다듬은 화단과 마당 한구석의 평상까지 어느 하나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처가에 갈 때면 미리 어떤 공구가 필요할지, 무슨 재료를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나만의 즐거운 의식이 되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고 나면, 이마에 맺힌 땀방울 위로 장모님의 환한 미소가 찾아든다. "에고, 보기가 너무 좋네 "매번 올 때마다 고생해서 어쩌나" 하시는 고마움 섞인 칭찬과 따뜻한 말 한마디면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가슴 한구석이 웅장해지는 뿌듯함. 그것이 좋아서 나는 처가에 갈 때마다 자처해서 일꾼이 된다.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은근히 피어오르는 작은 욕심이 있었다. 장모님의 백 마디 칭찬도 좋지만, 내 곁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아내의 따뜻한 눈길 하나, "당신 고생했어, 멋지네" 하는 사소한 인정 한마디가 그리웠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 아내에게 서운함이 켜켜이 쌓여가던 어느 날, 결국 작은 틈새를 타 사단이 터지고 말았다.

강남에 사는 처제네가 집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단이었다. 처가 건물에 지분이 묶여 있어 세금 폭탄을 맞게 생겼으니, 그 지분을 누군가에게 넘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별 뜻 없이, 그저 문제를 쉽게 해결해 보려는 마음에 툭 한마디를 던졌다.

"당신은 주소가 시골로 되어 있으니까 의료보험료 같은 데도 영향이 없고 괜찮잖아. 당신 앞으로 해두면 되겠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돌아온 것은 평소의 조용한 어조가 아닌, 날카롭게 날이 선 목소리였다.

"시골로 주소 둔 것 때문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는 줄 알아? 시청 복지관 프로그램 등록도 못 하고, 제한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당황한 나는 주소가 시골로 되어 있어 얻는 나름의 이점과 좋은 점들을 내 논리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건 지금 내가 겪는 불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답도 없고 끝도 없는 말싸움의 서막이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감정의 선을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적과의 전쟁보다 더 잔인하고 치열해진다. 국가 간의 전쟁은 승패라도 갈라지고 휴전 협정이라도 맺지만, 부부 싸움에는 승자가 없다. 둘 다 만신창이가 되는 싸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이성이 마비된 순간 우리는 과거의 해묵은 감정까지 서랍 속에서 죄다 꺼내어 서로에게 던져댔다. 치유하기 어려운 생채기가 서로의 가슴에 깊게 그어졌다.

나이가 들면 마음의 그릇이 넓어지고 이해심도 깊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나이가 들수록 타인의 지적이나 잔소리가 가슴 속 더 깊은 곳에 콕콕 박혀 아픔을 준다. 오히려 옹고집만 늘어가고 서운함은 더 쉽게 탄생하는 것 같다.

아내는 나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설 때면 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당신은 정말 나한테 '로또' 같은 사람이야."

처음에는 그저 웃어넘겼던 그 말이 그날따라 참 뼈아프게 다가왔다. 로또, 살면서 단 한 번도 번호가 맞지 않는 지독한 평행선.

돌이켜보면 내가 아내를 선택했던 이유는 나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옛사람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요조숙녀였다.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에, 매사에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 덜렁대고 선이 굵은 나와는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와 너무나 다른 그 고요함과 우아함에 반해 내가 적극적으로 구애했고, 마침내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반대의 성격에 매료되어 결혼했으면서, 막상 삶의 매 순간마다 그 반대되는 성격 때문에 이토록 로또처럼 비껴가며 부딪쳐야 한다니. 인생이란 참으로 얄궂은 아이러니다.

방수 페인트를 칠해 깔끔해진 처가의 외벽을 바라본다. 틈새를 메우고 덧칠을 하면 비바람을 막아주는 단단한 벽이 되듯, 우리 부부의 틈새도 그렇게 메워갈 수는 없는 걸까. 단 한 번도 번호가 맞지 않는 로또 같을지라도, 서로의 다른 번호들이 모여 결국 하나의 복권을 이루듯, 이 치열한 평행선 위에서 우리는 또 서로를 맞춰가는 법을 배워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부부라는 이름의 가장 어렵고도 찬란한 숙제를 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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