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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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강원도 춘천시 사농동 옥산포 출신이며 종갓집 장손으로 생전에 팔 남매를 낳으셨다. 또한 진주 할머니, 할아버지 홀로된 고모님 조카들까지 대가족 열다섯 식구를 거느리시며 일 년에 수십 번의 제사를 지내셨고, 돼지와 닭, 오리 등을 키우시면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 옥산포의 터줏대감 전형적인 농부였습니다.

파란만장한 아버지께서는 6·25 사변과, 그리고 왜정 때 징용에 끌려가셨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신 역사적인 전설이셨습니다. 또한 일본에 붙들려 갔을 때도 좌절하지 않으시고 긍정의 힘으로 일본인에게 아코디언 연주법을 배우시고 돌아오셨답니다. 그리고 의연하게 농사를 지으시고 짐승을 키우시고 잠깐 쉬실 때에는 집 뜨락에 있는 몇 백년 된 밤나무 그늘에서 기타와 아코디언을 치시며 노래를 부르셨고 정서적으로 행복하게 우리들을 보살피고 키우셨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아무리 땅에서 죽어라하고 농사를 지으셨어도 보릿고개 등 어려운 살림에 아버지의 모습은 나날이 변해가셨고 살갗은 거북이의 등 가죽처럼 울퉁불퉁 변하면서 광대뼈만 앙상하게 드러나고 야위어만 가셨습니다. 8남매에서 넷째 딸인 저는 철이 없어서 모두 다 그렇게 늙어 가는 줄 알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돌아보니 열다섯 식구를 먹여살리고 특히 궁금한 것은 금전문제를 어떻게 충당하셨을까? 생각하니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여서 두고두고 말로는 다 할 길이 없고 은혜스럽기만 합니다.

요즘 부모들은 맞벌이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투 잡, 쓰리 잡을 뛰면서 자식을 키워가고 노력하면 살길이 열려 있지만, 그 옛날 암흑 같던 시대를 생각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믿음직하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천금 같은 지혜는 어디에서 왔을까? 저에게는 어떤 위인보다 더 훌륭하시고 자랑스럽습니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신 아버지께서는 오늘도 자손들을 반짝반짝 비추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더 세상을 앞서가신 아버지!

은행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울 아버지 우주만큼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초상

 늙은 거미 이마에 이지러진 주름살

마디마디 가늘고 휘어진 손가락

실낱 모세혈관 같은 생명줄을

부둥켜 안고 의기소침 사력을 다한다.

 노을 한 조각에 걸친 보금자리는 그런대로 따뜻하다.

속절없이 흐르는 회한의 눈물은?

천년 묵은 송진 한 방울이다.

 삼라만상이 다 그렇듯이

곡예사의 첫사랑!

비범했던 날들은?

반딧불 되어 깜빡인다.

 백설처럼 흰 자작나무의 입김이

늙은 거미의 휘어진 등을 감싸주니

감촉은 목화밭에서 갓 뜯어낸 솜

 휘 늘어진 인동초 넝쿨 사이로

금, 은화 인동초꽃은

금빛 은빛 향기를 품어주고

청녹색 돌맹이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

 꾸어엉~꿩 구애하며

갈대숲의 수꿩 한 마리

목청 높여 울어대는 소리!

 뒤늦은 산책길 노인의 발자국 소리는?

늙은 거미의 회심곡이다.

이내 황금빛 노을은 낮은 가장자리로 내려 앉아

어둠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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