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문득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내가 이룬 것들은 모래성처럼 위태로워 보일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런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는 단 한 사람, 나의 가장 낮은 지점까지 묵묵히 지켜봐 준 '오래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인생이 내게 준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일 것이다.
오늘 문득 그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와 나 사이에는 굳이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공유한 것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의 철없던 장난기부터, 꿈 많던 소녀 시절의 설렘, 그리고 삶의 무게를 견디며 조금씩 성숙해져 이제는 어느덧 머리칼에 서리가 내린 할머니가 되어가는 오늘날까지. 우리는 서로의 인생이라는 책을 첫 페이지부터 함께 넘겨온 목격자들이다.
나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 일인가. 사회에서 만난 관계들은 나의 현재 모습, 나의 직업, 나의 성과로 나를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오래된 친구는 나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나약함을 알고, 나의 초라한 실패 뒤에 숨겨진 진심을 읽어낸다. 내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머물며 스스로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그는 요란한 위로 대신 묵묵히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 손길은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채찍이 아니라, "내가 여기 있으니 천천히 숨을 골라보렴"이라는 무언의 응원이었다.
힘든 시기를 지날 때, 세상 사람들은 흔히 거창한 조언을 늘어놓는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네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식의 뼈아픈 충고들. 하지만 내 친구는 달랐다. 그는 그저 곁을 지키며 나지막이 한마디를 건넸다.
"괜찮아, 너 지금 잘 살고 있어."
그 투박하고도 따뜻한 한마디는 그 어떤 철학적 격언보다 강력한 힘으로 내 가슴을 울렸다. 나의 잘됨을 시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마음, 내가 흔들릴 때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어 주는 든든함.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된다.
우리는 이제 거울 속에서 낯선 노년의 얼굴을 마주한다. 주름진 손마디와 느려진 걸음걸이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지만, 친구와 마주 앉아 차 한 잔을 나누는 순간만큼은 다시 그 시절의 소년, 소녀로 돌아간다. 서로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워하기보다, 함께 잘 늙어가고 있음을 확인하며 짓는 미소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유대감이 서려 있다.
생각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하게 따뜻해지는 사람. 존재만으로도 내 삶의 증거가 되어주는 사람. 그런 좋은 친구가 내 인생의 여정에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화려한 성취나 거창한 명예보다도,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이 단 한 사람과의 인연이 내 노년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물들인다.
앞으로 남은 길도 그리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만큼이나 깊고 넓은 신뢰의 숲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내일도 모레도, 우리는 서로에게 "참 잘 살고 있다"라고 말해주며 이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