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작가

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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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봉투와 사랑

계절이 바뀌어서 옷 정리를 했다. 평소에 외출이라도 하려면 입고 나갈만한 옷이 없어 이 옷 저 옷 뒤적이며 옷 고르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정리하려고 옷장 속에서 반도 못 꺼냈는데 산더미같이 많았다. 이 많은 옷을 언제 정리를 다 하지? 혼잣말하며, 두꺼운 옷은 자주 열어보지 않는 장롱 깊숙한 곳에, 바지, 티셔츠, 아웃터 패딩 등 색깔을 분류해서 제자리에 각각 두었다.정리하다 보니 벌써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서랍 속 밑바닥에 봄옷과 간절기 옷을 꺼낼 즈음 ‘빛바랜 봉투’ 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봉투에는 하트모양, 잔잔한 꽃무늬, 동물, 새 그림들이,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봉투에는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언제나 꽃길만 걸으세요 라는 문구들이 있었다. 그림과 문구만 봐도 세월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동안 어버이날, 생일, 명절 등 특별한 날에만 자식들에게 받았던 용돈 봉투였다.혹시? 남은 내용물이 있나 하고 한 장 한 장 빼꼼히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비록, 빈 봉투였지만 자식이 준 선물이라 귀하게 여겨 색이 바래도록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었다. 받은 용돈은 큰딸 손녀 1명, 작은딸 손녀 2명에게, 계절 옷, 장난감을 사주고 뮤지컬, 영화 보러 가는데, 일부 썼다. 나머지는 돼지 저금통 3마리를 사서 돼지에게 골고루 나눠서 밥을 주었다. 3마리 저금통이 지금은 2마리밖에 안 남았다. 6년 전에 큰손녀 초등학교 입학식이 떠올랐다. 큰손녀가 입학하기 1년 전부터는 돼지 한 마리에게 집중적으로 밥을 주었다.지금은 지출에 관한 모든 볼일은 카드 한 장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그때는 돼지에게 더 많은 밥을 주기 위해 현금으로 부식을 사고 세금을 내고 남은 돈과 거스름돈으로 돼지 배를 꽉꽉 채웠다. 제법 묵직했다. 입학식 날 금일봉과 돼지 한 마리를 선물했다. 손녀는 선물을 받아들고 “할머니! 돼지 나주는 거예요? 라며 묻는다. 손녀가 주말이나 방학에 놀러 왔을 때도, 동전과 잔돈이 생기면 함께 돼지에게 밥을 주며 무럭무럭 잘 커라! ‘하며 애지중지 아끼던 물건같이 보였는데 선물로 준다고 하니. 놀라워하며 너무나 좋아했다.손녀는 친구에게 전화했다.“희수야! 난 할머니에게 돼지 한 마리 선물 받았다!”“야! 아파트에서 어떻게 키우려고…까르륵 웃었다. “살아 있는 돼지 말고 돼지 저금통을 한 마리 받았거든“ 깔깔거리며 웃던 모습들이 생각났다. 기억에 남는 좋은 선물이었나보다. 뛸 듯이 좋아하던 손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년에는 둘째 손녀가 초등학교 입학이다. 열심히 밥을 주어서 손녀에게도 선물을 해야겠다. 좋아할 손녀의 모습을 생각하니 내 마음도 흐뭇하고 미소가 지어졌다.자식에게 받는 사랑도 크지만, 내리사랑이라고 주는 사랑은 행복감이 열 배는 넘지 않을까? 손녀 사랑은 끝이 없다. 작은사랑이지만 크게 느낄 수 있는 이벤트 할머니가 되고 싶다. 예전에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의 생각이 난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어머니 방 청소를 할 때마다 문갑 서랍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누렇게 얼룩진 봉투들이 눈에 거슬렀다. 어머니 몰래 버릴까? 하다 못 버리고 그냥 놔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랍 속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다.4대 독자 아들과 외며느리가 주는 용돈 봉투가 어머니에겐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었나보다 그래서 소중하게 생각해 수년간 쌓아두었던 거다. 그때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과 내가 귀하게 여겼던 마음이 같았으리라 이해가 되었다. 어머니는 가끔 제철 과일, 생선, 채소 등을 사 와서 손질도 해 주고 “함께 먹자” 하며 다정하게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 주었다. 과일을 먹으며 “어미야” 무엇이든 절약하고 아끼며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다.그땐 몰랐다. 어머니도 우리에게 받은 용돈으로 그렇게 써왔던 것을… 어머니도 받는 기쁨보다는 주는 기쁨이 몇 배 더 컸으리라 짐작된다. 어머니에 무언의 속정 깊은 사랑이 무엇인지 다는 모르겠지만, 칠순이 되고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살아계셨더라면 증손자까지 보시며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하셨을까? 가끔 생각이 난다.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이 나에게는 내리사랑이 되었고 어머니의 사랑법이 내 자식을 키우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습니다.

박소연2025.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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