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잘 지내시지요? ” 며칠 전 신갈에 사는 깔끔이가 안부 문자를 보내왔다. “일주일 후 용인 세브란스병원에 가는데 병원 근처에 사는 언니네 집에서 자고 올 거야. 시간 괜찮으면 얼굴 볼까?” 반가움에 나도 얼른 답 문자를 보냈다. ‘아줌마가 여기까지 오시는데 만나 뵈어야지요’ 기다렸다는 듯, 깔끔이의 답도 돌아왔다. 깔끔이와의 약속이 잡히는 순간부터 나는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30년 전 수원에 살 때, 밥공기만 한 핸드폰 충전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깔끔이를 처음 만났다. 틈만 나면 온몸을 탈탈 털어 깔끔이라고 별명이 붙은 친구다. “아줌마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했지만. “너 깔끔이 맞잖아!” 나는 개의치 않았었다. 친구라고 해도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딸 같은 친구다. 별명을 부르거나 이름을 불러도 흉 허물없는. 수원에서 양구로 온 지 16년이 다 되었다. 이사 오고 이듬해 깔끔이가 우리 집을 다녀갔다. 그때 깔끔이는 “아줌마 선물을 뭘 사드려야 할지 몰라서요.” 하며, 익숙한 손 글씨로, “아줌마 건강하세요. 고향에 오신 걸 축하드려요.”라고 적은 예쁜 봉투를 내밀었었다. 그 후 십여 년이 훌쩍 지났건만 지금도 늘 만나는 친구처럼 편하다. 이른 아침부터 냉동실에 얼려 놓은 옥수수를 찌고 언니가 좋아하는 살구 몇 개 챙겨 배낭에 메고 동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진료를 마치고는 예정대로 병원 근처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양 무릎을 수술받고 재활 중인 언니는 절뚝대는 걸음으로 반갑게 맞아줬다. 그 다리를 이끌고 내가 좋아하는 닭죽까지 끓였다고 하니 언니가 고맙고 또 한편 미안했다. 그런 언니에게 약속이 있어 나간다고 하자 몹시 서운한 눈치다. 닭죽은 아침에 먹기로 하고 약속 장소로 갔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친구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줌마와 찍은 사진이 없다며 다정하게 웃음까지 보였다. 전에는 사진 찍기 정말 싫어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그런 것도 변하는구나 싶다. 참 변함없는 친구다. 생일날이면, ‘아줌마 좋아하는 시집입니다. 생신 축하드려요.’ 언제나 손 글씨를 적어 축하해 주었다. 연말이면 ‘올해도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아줌마 자주 연락 못 해도 제 맘 아시죠?’ 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 친구 덕에 우리가 그렇게 특별한 사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근무 중, 잠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면 깔끔이가 복도에서 자판기 커피를 양손에 들고 “아줌마 커피 드세요.” 했었다. 점심시간에는 모두 들 달리기 선수로 변한다. 식사를 빨리 마치고 몇 분이라도 더 쉬려는 속셈이다. 그때도 친구는 어느새 식당으로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놓고 “아줌마 여기요!” 하며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늘 나를 살갑게 챙겨주던 그 친구는 삼척이 고향이고 친한 언니와 자취를 한다고 했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었다. 퇴근 후에 “저녁같이 먹을까?” 물으면 “집에 가서 가족들 저녁 준비하세요.” 단박에 거절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밥 먹자. 찻집 갈까?” 해도 “됐어요.” 한마디로 철통방어다. 같은 나이 또래들은 퇴근 후에 영화도 보러 가고, 더러는 술을 마시기도 하는 듯한데 이 친구는 늘 집으로 직진했다. 그런 깔끔이의 속내가 나는 무척 궁금했다. 다행히 그렇게 반년쯤 지나고야 “아줌마 뭘 좋아하세요? 제가 저녁 살게요.” 하며 곁을 내주었다. 그날을 계기로 우리는 종종 찻집에 마주 앉았다. 더 이상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독촉했다. ‘이제는 마음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느냐 ’ 고. 그날 깔끔이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7남매의 여섯째인데 어릴 때 영어를 좋아하고 잘해서 외교관이 꿈이었단다. 하지만 오빠들 공부시키느라 고생하는 연로하신 부모님 생각에 대학교에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돈 벌어서 동생 학비 보내고 부모님께 도움이 되는 게 기쁘고 현재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왜 그렇게 말이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꿈을 포기하고 마음을 닫아야 했던 친구가 안쓰러웠다. 나도 뭔가 그 친구를 챙겨주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친구 역시 늘 그만큼의 거리에서 나를 대했다. 그래도 위대한 시간은 우리를 절친의 자리로 옮겨 놓고 있었다. “결혼?” 그런데 이번 만남에선 정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깔끔이에게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가운 소식이 더 있으랴. 나까지 괜히 설렌다. 깔끔이는 무조건 행복할 거다. 젊은 날 고생 많이 했으니 깔끔이에게 남은 것은 아마도 행복뿐일 거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친구야 많이, 많이 축하한다.

조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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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선2025.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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