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치계곡, 마음에 숲을 심다조은선 광치계곡은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대암산이 품고 있는 계곡이다. 양구에서 인제 방면으로 달리는 31번 국도를 따라가면 구검문소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면 광치계곡에 닿는다. 크고 작은 능선으로 둘러싸여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다하여 고개 이름을 ‘광치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동지도』에는 ‘광치’ 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오랜만에 친정에 온 딸 내외, 외손자와 길을 나섰다. 우리 마을에서 자가용으로 3~4분 남짓 가다 보면 계곡 입구에 광치휴양림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의 손길보다 자연의 숨결이 먼저 느껴지는 그 휴양지가 우리 마을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광치계곡 입구에는 소지섭 길, ‘양구 10년 장생 길’ 안내 표지가 있다. 이곳에서 옹녀폭포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옹녀폭포 초입에 변강쇠와 옹녀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온다. 옹녀와 변강쇠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에서 정분을 나누었는데, 이를 보고 크게 노한 산신령의 지팡이에 얻어맞아 옹녀는 이곳에 엎어져 바위가 되었고, 변강쇠는 50m 지점 아래에 굴러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바위를 옹녀의 엉덩이라 하여 옹녀폭포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연유인지 모르지만 예부터 이 광치계곡을 연애골이라고도 했었다. 광치계곡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상수리나무와 전나무, 소나무들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며 이곳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는 듯하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은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지 못할 만큼 차갑다. 수정처럼 맑은 물은 돌 틈 사이를 비집고 졸졸 소리 내며 흐르기도 하고, 납작하고 커다란 바위를 어루만지듯 넓은 물결을 펼치기도 한다. 비 그친 뒤 햇살을 머금은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까지 씻기는 듯 고요해진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이름 모를 작디작은 곤충들이 톡톡 튀는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발걸음은 어느새 야생화를 쫓고 있다. 연보라색 초롱꽃, 주황빛 화려함을 뽐내는 참나리꽃, 늦가을 빨간 열매가 매혹적인 마가목은 가지 끝에 소박한 하얀 꽃송이가 원을 그리듯 피어난다. 한 아름 고사리 풀도 짙은 녹색을 뽐내며 눈길을 끈다. 앞서 지나간 이들의 발자국들이 남긴 희미한 길을 잡초들이 덮고 있다. 풀에 발길이 스치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발걸음을 멈추니 숲속의 작은 소리들이 다가온다.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오는 나뭇잎의 속삭임, 멀리서 들려오는 맴맴 매미 울움이 잔잔히 번져간다. 날렵한 다람쥐 한 쌍, 사진 찍을 사이도 없이 달아난다. 하늘과 맞닿을 듯한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빛을 받으니 바쁘게 흘러가던 시간도 이 순간만큼은 잠시 멈춰 선 듯하다. 그렇게 숲길을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니 어느새 옹녀폭포에 발길이 닿아 있다. 옹녀의 엉덩이를 닮았다는 바위 사이로 물줄기가 힘차게 흘러내린다. 쏟아지는 물소리에 세상의 소음은 저만치 밀려나고 온갖 잡념이 사라지는 듯하다. 산줄기를 타고 내리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발이 시리도록 차갑고 세차다. 딸과 사위, 외손자는 그 아래에서 물세례를 받으며 깔깔대며 마냥 즐거워한다. 사위는 옹녀폭포에 온 걸 기념으로 남겨야 한다며 연신 사진을 찍는다. 한참을 놀고 나니 슬슬 배가 출출해진다. 길 떠날 때 배낭에 챙겨온 은박 돗자리를 펴고, 사과와 바나나, 직접 키운 방울토마토, 옥수수와 구운 도넛, 오렌지주스를 하나씩 펼쳐놓는다. 폭포 소리를 배경 삼아 웃음이 번지는 간식 시간이다. 사위는 광치계곡에 푹 빠졌다며 처가에 오는 큰 즐거움이라고 한다. 광치계곡은 가을에 더 아름답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숨은 단풍의 명소라고 입을 모은다. 계곡 초입부터 빨강, 노랑 단풍이 반기고 낙엽이 쌓인 운치 있는 나무다리를 걷다 보면 낙엽 밟는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어우러져 마음에 평화를 안겨준다. 옹녀폭포를 따라 걷다 보면 낙엽 속에서 뒹구는 자연산 가래도 눈에 띈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가래 줍는 재미에 빠지기도 한다. 호두보다 알맹이는 작지만 고소하고 맛있다. 잘 익은 열매는 호두와 비슷하지만 덜 익은 것은 개복숭아를 닮았다. 바쁜 일상을 잠시 미루고 쉬고 싶은 사람들, 자연을 찾아 전국에서 모여드는 이들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저마다 마음에 고운 단풍 하나쯤은 품고 돌아가며 또 오고 싶다고, 이 계절이 기다려질 거라고 아쉬움을 남긴다. 광치계곡의 가을은 그렇게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숲 하나를 만들어 준다. 여름에도 오후가 되면 서늘하게 느껴지는 곳, 고운 단풍으로 물든 광치계곡은 잠시 머물다 가기에 참 좋은 곳이다.
조은선
조은선
수필(2)
“아줌마 잘 지내시지요? ” 며칠 전 신갈에 사는 깔끔이가 안부 문자를 보내왔다. “일주일 후 용인 세브란스병원에 가는데 병원 근처에 사는 언니네 집에서 자고 올 거야. 시간 괜찮으면 얼굴 볼까?” 반가움에 나도 얼른 답 문자를 보냈다. ‘아줌마가 여기까지 오시는데 만나 뵈어야지요’ 기다렸다는 듯, 깔끔이의 답도 돌아왔다. 깔끔이와의 약속이 잡히는 순간부터 나는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30년 전 수원에 살 때, 밥공기만 한 핸드폰 충전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깔끔이를 처음 만났다. 틈만 나면 온몸을 탈탈 털어 깔끔이라고 별명이 붙은 친구다. “아줌마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했지만. “너 깔끔이 맞잖아!” 나는 개의치 않았었다. 친구라고 해도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딸 같은 친구다. 별명을 부르거나 이름을 불러도 흉 허물없는. 수원에서 양구로 온 지 16년이 다 되었다. 이사 오고 이듬해 깔끔이가 우리 집을 다녀갔다. 그때 깔끔이는 “아줌마 선물을 뭘 사드려야 할지 몰라서요.” 하며, 익숙한 손 글씨로, “아줌마 건강하세요. 고향에 오신 걸 축하드려요.”라고 적은 예쁜 봉투를 내밀었었다. 그 후 십여 년이 훌쩍 지났건만 지금도 늘 만나는 친구처럼 편하다. 이른 아침부터 냉동실에 얼려 놓은 옥수수를 찌고 언니가 좋아하는 살구 몇 개 챙겨 배낭에 메고 동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진료를 마치고는 예정대로 병원 근처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양 무릎을 수술받고 재활 중인 언니는 절뚝대는 걸음으로 반갑게 맞아줬다. 그 다리를 이끌고 내가 좋아하는 닭죽까지 끓였다고 하니 언니가 고맙고 또 한편 미안했다. 그런 언니에게 약속이 있어 나간다고 하자 몹시 서운한 눈치다. 닭죽은 아침에 먹기로 하고 약속 장소로 갔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친구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줌마와 찍은 사진이 없다며 다정하게 웃음까지 보였다. 전에는 사진 찍기 정말 싫어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그런 것도 변하는구나 싶다. 참 변함없는 친구다. 생일날이면, ‘아줌마 좋아하는 시집입니다. 생신 축하드려요.’ 언제나 손 글씨를 적어 축하해 주었다. 연말이면 ‘올해도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아줌마 자주 연락 못 해도 제 맘 아시죠?’ 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 친구 덕에 우리가 그렇게 특별한 사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근무 중, 잠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면 깔끔이가 복도에서 자판기 커피를 양손에 들고 “아줌마 커피 드세요.” 했었다. 점심시간에는 모두 들 달리기 선수로 변한다. 식사를 빨리 마치고 몇 분이라도 더 쉬려는 속셈이다. 그때도 친구는 어느새 식당으로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놓고 “아줌마 여기요!” 하며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늘 나를 살갑게 챙겨주던 그 친구는 삼척이 고향이고 친한 언니와 자취를 한다고 했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었다. 퇴근 후에 “저녁같이 먹을까?” 물으면 “집에 가서 가족들 저녁 준비하세요.” 단박에 거절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밥 먹자. 찻집 갈까?” 해도 “됐어요.” 한마디로 철통방어다. 같은 나이 또래들은 퇴근 후에 영화도 보러 가고, 더러는 술을 마시기도 하는 듯한데 이 친구는 늘 집으로 직진했다. 그런 깔끔이의 속내가 나는 무척 궁금했다. 다행히 그렇게 반년쯤 지나고야 “아줌마 뭘 좋아하세요? 제가 저녁 살게요.” 하며 곁을 내주었다. 그날을 계기로 우리는 종종 찻집에 마주 앉았다. 더 이상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독촉했다. ‘이제는 마음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느냐 ’ 고. 그날 깔끔이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7남매의 여섯째인데 어릴 때 영어를 좋아하고 잘해서 외교관이 꿈이었단다. 하지만 오빠들 공부시키느라 고생하는 연로하신 부모님 생각에 대학교에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돈 벌어서 동생 학비 보내고 부모님께 도움이 되는 게 기쁘고 현재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왜 그렇게 말이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꿈을 포기하고 마음을 닫아야 했던 친구가 안쓰러웠다. 나도 뭔가 그 친구를 챙겨주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친구 역시 늘 그만큼의 거리에서 나를 대했다. 그래도 위대한 시간은 우리를 절친의 자리로 옮겨 놓고 있었다. “결혼?” 그런데 이번 만남에선 정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깔끔이에게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가운 소식이 더 있으랴. 나까지 괜히 설렌다. 깔끔이는 무조건 행복할 거다. 젊은 날 고생 많이 했으니 깔끔이에게 남은 것은 아마도 행복뿐일 거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친구야 많이, 많이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