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작가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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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나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연습장에 그림을 즐겨 그리고 중학교 미술 시간에 포스터를 그려 상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 관념이 투철한 아버지의 벽에 부딪혔다. 화가는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이유에서다. 완강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화가가 되는 꿈을 키우는 것은 어린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고등학교 때는 그림을 대신해 동아리에서 한글서예를 대학에서는 한문 서예를 배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예가가 되려고 중국으로 유학 갈 준비를 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중국어를 배우며 붓글씨를 썼다. 그러나 또다시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붓을 꺾고 취직해서 평범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성인이 되고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나는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취미로 그림을 그렸지만, 전문가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나의 삶은 더 활기차졌다. 경제력이 생기니 내 맘대로 배우고 싶을 것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아동미술을 알게 되어 사설학원에서 일 년 과정을 열심히 배워서 수료했다. 그 후 미술학원에 취직해 유치부와 초등부 아이들 미술을 지도했다.결혼하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붓글씨를 쓰게 되었다. 공모전에서 여러 번 상을 타면서 초대작가가 되기 직전 유방암과 갑성선암이 찾아왔다. 지금까지의 내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긴 세월 서예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즐거웠던 시간 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상을 탈 때마다 나의 자존감을 높여 주고 삶에 기쁨을 주었던 것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다. 조금만 가면 고지에 오를 수 있는데 여기서 멈춰야 하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했다.다행히 수술과 항암치료를 힘겹게 이겨내고 암을 잘 극복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오른팔에 3kg 이상은 들지 말라고 했다. 암이 오른쪽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전이되었기 때문에 무거운 것을 들거나 너무 무리하게 팔을 사용하면 림프 부종이 생겨 고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두렵고 무서웠다. 조금만 오른팔이 뻑뻑하고 결리면 혹시 부은 것이 아닌가 하고 왼쪽 팔과 비교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대작을 써야 하는 서예 공모전은 아예 도전할 생각도 할 수 없었다.꿈을 향해 앞으로 열심히 가던 나는 멈춰야 한다는 것이 투병하는 만큼 슬픈 일이지만, 오른팔은 무거운 것을 못 드니 생활하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무리하면 수술한 부위가 먹먹하고 아파서 계속 마사지를 해야 했다. 내 몸을 내 맘대로 쓸 수가 없으니 답답하고 힘들 때가 많았다. 오른쪽 팔에는 주사도 못 맞고 채혈도 하면 안 되고, 혈압도 재면 안 좋다고 해서 모든 것을 왼팔이 감당했다.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꾸준히 받아야 하니 왼쪽 팔 입장에서 생각하면 무척 힘들고 억울할 듯하다.항암으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고 채혈을 자주 하니 혈관이 도망가고 수축해 간호사들이 채혈할 때 혈관을 잘 못 찾았다. 한 번에 성공을 못 하고 세 번까지 바늘을 찌르다 결국 채혈을 잘하는 분이 해 주기도 했다. 채혈에 실패하면 너무 아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이런 내 처지가 너무 슬프다. 이제 채혈하는 것이 공포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래서 한 번에 성공하길 늘 간절하게 기도한다.시간이 지나 병원 가는 횟수가 줄 때 감정을 담아 쓸 수 있는 캘리그라피를 알게 되었다. 마음이 약해 있던 나는 이것을 배워 어디다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의 재능을 잘 알고 있던 후배가 ‘언니가 배우면 작은 도서관에서 강의할 수 있게 해 줄게’ 했다. 나는 후배의 말에 힘입어 캘리그라피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어디서 배울까 알아보았다.인터넷 강의와 도서관에서 캘리그라피에 관한 다양한 책을 빌려 독학했다. 붓글씨를 20년 정도 써서 그런지 배우기 수월했다. 서예처럼 옛 조상들이 쓴 글씨를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이 아니었다. 글 내용에 맞는 느낌의 글씨체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캘리는 글씨 옆에 내용과 어울리는 간단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의 내면을 채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캘리그라피의 용도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수없이 많은 글자체가 컴퓨터에 등장하는 것처럼 손글씨의 용도도 드라마나 영화 제목, 상품 광고, 간판, 엽서, 감사 봉투, 천 가방 등 모두 나열하기 힘들다. 캘리는 붓 하나만 들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마음을 담은 글씨를 간편하게 쓸 수 있어 좋다. 요즘 선물을 해야 할 때가 생기면 캘리 작품을 써서 주면, 선물 받는 분들이 무척 좋아한다.사람들은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다 고등학교 때 학원 선생님이 붓글씨를 배우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아리에서 붓글씨를 배우게 되었다. 결혼하기 6년 전에는 아동미술을 알게 되어 배워서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결혼하고 내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을 모아 아동미술과 붓글씨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은 해솔감성글씨 연구실을 만들어 작품을 만들면서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가장 어려울 때 나에게 힘을 준 후배 덕분이다.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사)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그림책과 동화책을 보면서 그림책에 푹 빠졌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태몽 그림책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어 태몽 그림책도 한 권 내서 성취감과 행복을 느꼈다. 같은 도서관에서 동시를 배우면서 등단도 하게 되었다. 동시를 꾸준히 쓰다 보니 나의 첫 동시집도 출간하는 기쁨도 누렸다.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자기가 선택한 길을 오르다 보면 산 정상에 도달한다. 우리 인생도 같은 이치라 생각한다. 다른 누구랑 비교하지 말고 내가 선택한 나의 길을 가면 된다. 그 길에서 내가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 인생은 성공한 삶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배우면서 살아왔다. 이제 배운 모든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고 있다. 나는 지금 동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캘리 수업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 현재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있으니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박영숙2025.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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