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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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신앙은 제가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 집안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어느 일요일 아침! 우리 집을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고인이 된 지 아주 오래된 제일 큰 형이 교회에 간다는 것으로 형은 저녁 예배에만 참석하여 집에서는 동네 마실 가는 것으로 알다가 믿음과 신앙이 깊어지자 주일 낮 예배 참석을 강행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동 아버지한테 발각되었고, 바로 이은 아버지의 분노한 구타로 인해 공포 분위기 속에 우리 형제들은 숨죽여 온몸을 떨어야만 했습니다.

 그날은 사람이면 누구도 열외 병력 없이 감자심기에 총동원되어야 했습니다. 어느 정도 폭풍이 잠잠해지고 아버지는 저의 큰 형을 앉혀놓고“그래, 네가 다니는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얘기해 보거라.” 아마도 형은 설교에 가까운 얘기들을 속사포같이 쏟아 냈고 아버지 또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이시라 모든 얘기가 맞고도 기가 막힌 말들이니 수긍하기 시작하면서 마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였듯이 모든 식구가 교회를 나가도록 권유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초등학생의 걸음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교회는 좀 멀게 느껴져 많이 다니지는 못했고 중고등부 예배에 중점적으로 참석하게 되었으며 고등학생 때 학생부 회장이 되어 예배 인도를 하게 되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많이 타 누구 앞에 설 수 없는 내성적인 성격이 사회성도 발달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보며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이며 복을 받은 것이라고 믿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대학생이 되어 시골에서의 겨울이면 너무 추워 이른 아침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약성경을 읽으면 머릿속에 쭉 빨려 들어오는 느낌과 마치 꿀송이보다 더 달았던 기억을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성경 교육 기관이나 단체로부터 성경 문제를 받아 답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성경 지식을 습득했으며 젊은 날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그때 만연했던 한얼산기도원을 찾곤 했습니다.

1980년대 대학생 때부터 중고등부 교사를 맡아 20년 이상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때가 추억도 많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저는 어쩌면 그냥 순탄하게 신앙생활을 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젊은 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신)의 존재를 정립하고 확신을 위한 철학적 논리와 고뇌 등의 풍화작용을 거쳤다고 봅니다. 그렇게 구축된 존재의 확신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견고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30대 중반,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여름휴가를 일주일 가시게 되면 예배를 저에게 일임하곤 하여 설교 준비에 부담을 느끼긴 했지만, 그로 인하여 신앙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엄청난 축복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의 신앙에 깊숙이 관여하시고 간섭하시며 인도하심을 느끼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하나님의 도구로 쓰시려는 계획이 있으신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긴 시간은 저를 단련하고 훈련 시키신 하나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물론 아직도 겸손하지 못하고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매년 한 번씩 성경을 완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맛보며 감격이 밀려올 때가 가장 행복하고 희열을 느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와서 한평생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믿지 못하며 살다 가는 것이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비유하자면 태어나서 자기 부모를 알지도 못하고 만나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이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한 하나님의 말씀인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비밀을 알게 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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