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해결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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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진리처럼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여기서‘사회적’이라는 용어에 주목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원과 원인을 규명해주고 해결해 주는 명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2010년대 강원도청 기업유치과에 근무하던 시절, 태백시에서 한 민원인이 서류뭉치를 잔뜩 끌어안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사연인즉 태백시에 연탄공장을 설립하고자 했는데 태백시에서 법적으로 도저히 안 되는 사업으로써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속상하고 답답한 나머지 도에 찾아와 해결해 보려는 심사인 것 같았다. 담당 부서는 나의 옆 팀의 소관이었는데 하필이면 팀장을 비롯한 중견 직원들이 출장 등 자리를 비우고 새내기 직원이 상담하려니 일도 잘 모르거니와 심적 부담으로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나한테 와서 “차석님 저 좀 도와주세요.”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계획이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공무원을 불신하고 공직사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 민원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우선 이 사람의 마음이 많이 힘들고 그 마음의 고통을 알 것 같다는 마음을 전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딱딱한 법적인 문제는 아예 언급하지도 않고 세상 살아가면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해결이 잘 안 되는지와 공무원도 해주고 싶어도 법적인 조건들을 지킬 수밖에 없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이라서 그런 것뿐이며, 또한 민원인들도 그러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한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을까, 가지고 온 서류 뭉치를 안고 일어나는 것이다.

 이분의 마음이 들어올 때는 얼음장 같았던 마음이 녹은 것일까? “아! 마음이 후련하네!”하면서 웃는 낯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나는 보람 같은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분의 하고자 했던 뜻을 이루지는 못했겠으나 마음의 짐은 해결되었는지 모른다. 결국, 이 민원은‘법적’으로는 풀 수 없는 것이나‘사회적’으로 풀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을 법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고‘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것일까?

 민원의 형태는 수만 가지이며 그 유형이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고질적인 민원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민원인들은 민원을 넣을 수 있는 모든 기관에 민원을 제출한다. 즉 최일선의 지자체 행정기관부터 시작하여 도청은 물론 중앙부처를 비롯한 최상급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와 대통령실까지 모조리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결국은 처음 제출했던 최 일선의 행정기관으로 이첩되어 되돌아온다. 어쩌면 민원인 자체도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민원을 제기하는 이유는 다분히 고의적이고 상대방을 힘들게 하려는 심사가 작동되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고 짐작된다. 그 저변에는 마음의 문제가 원인이 되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 즉‘사회적’으로 풀어보는 방법을 찾아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법이나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해는 석양의 노을이 되어 내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살포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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