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 2년 전부터 제안하고 기획한 일본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다.‘25.11.30~12.4일의 4박 5일간 교인 10명이 후쿠오카, 나가사키, 벳부 우레시노 온천을 여행하는 일정이다. 갈 때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올 때는 항공편으로 오는 것으로 다소 낭만적이고 재미있는 여행으로 우리 모두는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고 들뿐 분위기다. 처음부터 바로 일본을 선정한 것은 아니고 교회의 속성상 짧은 일정의 제약 조건에 맞춰, 대만과 일본 중 논의를 거쳐 신앙적 차원에서 26명의 순교자 기념관이 있는 일본을 택하게 되었다.
오전 예배를 마치고 점심은 김밥으로 준비하여 부산으로 출발하는 대절 승합차 안은 온통 행복의 도가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 배멀미 약을 먹고, 귀미테를 붙이고 난리가 아니다. 난 촌놈 출신이라 멀미와 무관하다. 5시간 반만에 부산항에 도착하니 배가 엄청 커서 멀미 소동은 헛수고란 생각이 든다. 우리 일행 10명이 한 칸에 들어가는 맞춤 마루방이다. 부부도 있지만 싱글도 있는데 남녀 각 5명이다. 병원처럼 한 구석에 옷을 갈아입는 칸막이도 있어 그런대로 불편하지 않고 색다른 경험이다. 부산항 일대의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니 다들 사진찍기에 분주하다. 새벽 두세 시쯤 됐을까 배가 살짝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쿠오카 하카타항에서 내리니 월요일 이른 아침이다. 이제부터 일본의 본격 여행이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 고쿠라 옛 성 등 일부 관광지를 둘러보고 한국과 비슷한 샤브샤브로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었는데 밤이 쓸데없이 길으니 어쩌랴! 야시장 구경을 나갈 수밖에! 야시장은 북새통에다 휘양찬란한 것이 교회는 없는데 왜 이다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온통 도배를 했는지 필경 상업적 수단이리라!
다음 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나가사키 일본 초기 기독교 박해와 26인의 순교자를 기리는‘일본 26성인 기념관’과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에 눈과 귀를 집중하는 시간이다. 공교롭게도 별개의 이 커다란 두 사건이 왜 나가사키에 있는 것일까. 먼저 성지 순교자 26성인부터 언급하고자 한다. 26인은 20명의 일본인 신도와 6명의 외국인 선교사라고 하는데 스페인 선교사가 좀더 많은 편이다. 아무튼 이들은 1597.1.4.~2.5까지 교토에서 나가사키로 735.3km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끌려와 공개적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이다. 일본인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공개했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12살, 13살 된 소년들이 있어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참고로 일본의 기독교 전래는 1549년이라 하니 1876년인 우리나라에 비하면 327년 먼저 들어와 1582년에 200여 개의 교회와 15만 명의 개종자(불교에서 개신교)와 75명의 선교사가 있었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그때가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기 10년 전이니 선조시대로서 당파싸움의 막장 드라마와 왜적의 잦은 침략으로 온 백성이 도탄에 빠져있던 터라 앞으로 조선의 운명은 어찌되는 것일까...
다음은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이다. 전시된 참상은 방대하고 너무 끔직하며 상상을 초월하기에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해도 부족하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에 멈춰있는‘고장난 벽시계’가 그날의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을 알고 있다. 나가사키 인구 약 24만 명 중 사망자 73,884명, 부상자 74,909명이라니 62%가 희생당했다. 그것도 참혹하기 이를 데 없이 말이다. 그뿐인가. 도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철도 녹이고 돌덩이도 태우는 가공할 위력은 가히 상상도 안된다. 그러니 사람처럼 연약한 육체적 존재는 어떠했겠는가! 그도 그럴 것이 원자폭탄 에너지의 내역은 폭풍 50%, 열선 30%, 방사성 15%로 구성된 길이 3.25미터, 직경 1.52미터, 무게 4.5톤으로 폭발 시 폭약 21킬로톤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방출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모든 게 다 날아가고 다 타버리고 방사선에 암이 속출하고 사람 내장이 다 망가져,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얘기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후대까지 휴유증이 전이되니 인류가 만들어낸, 만들어선 안 되는 재앙을 만들어서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탈진한 심신을 온천욕으로 달랬다. 날이 밝아 다음날, 이제 실제적 마지막 일정이다. 내일이면 나를 품어주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자연 친화적인 동물원으로 1,000여 마리의 일본 원숭이들이 자유롭게 서식하는 다카시키야마 자연동물원을 보는데 신기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부모자식 간에 이나 벌레를 잡아주는 모습은 마치 사람의 친근감과 흡사하다. 마지막 코스, 온천으로 유명한 벳부 우레시노‘온천지옥’이라 불리우는 마을에 들어서니 연기 같은 수증기와 함께 유황의 톡특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매년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돈을 쓰고 가니 섣불리 이사를 갈 수도 없단다. 뜨거운 온천이 샘 솟는 현장을 목격하며 온천물에 발을 담그는 체험을 끝으로 주요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이번 일본 성지순례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원폭 사건과 26성인의 순교 현장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참혹한 재앙과 나의 믿음과 신앙심이 연계된 탓일 것이다. 기념관에는 순교자들의 이름과 나이가 기재되어 있는데 12살 가장 어린 순교자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가 없다.“이 세상의 짧은 생명을 영원한 생명과 바꿀 수 없다.”며 순교하여 동료들이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순교하였다고 한다. 과연 나는 이 상황에 처하면 저 어린 소년처럼 단호하고도 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 놓인다면 내 몸을 미련 없이 던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난 이제 더 이상의 평신도가 아니며 주님은 내게 그렇게 하라고 직분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그 소년보다 다섯 배도 넘는 세월을 살았다. 이 세상에 그 무슨 미련이 있으며 무슨 영화를 보겠는가. 또한 그것들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12세 소년성인 순교자는“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는 성경구절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금번 일본 성지순례를 기획하시고 준비하시고 인솔하신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들의 연약한 믿음과 신앙을 한 차원 높게 가지라고 보여주시고 단련시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