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때론 탈출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아무래도 천편일률적으로 매일 똑같을 순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날씨와 같아서 햇빛이 쨍쨍하고 화창하여 그냥 기분이 좋은 날도 있지만, 흐리고 바람 불고 먹구름에 천둥 치고 비가 오고 구질구질한 날도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 여정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아주 시시하고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는 가정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정말 얘기를 털어놓기 민망하고 부끄럽고 창피할 만한 일로 아내와 말다툼을 하였는데 싸한 분위기가 며칠 가니까 마음이 영 답답한 것이, 이건 분명 일탈을 명령하는 계시(?)라고 나 스스로 확고한(?) 정의를 내렸다. 근데 누구를 만나러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2006년 문화재청에서 10박 11일간의 전국 광역시도 및 시군 문화재 담당자들을 위한 유럽권 문화탐방에 따른 해외연수를 실시하였는데, 그때 나는 함께 한 태백시 담당자와 룸메이트가 되어 지금까지 20년의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현직일 때는 전화상에서 이 사람은 나를 ‘전하’라고 부르고 나는 ‘영상대감’이라 부르며 재미나게 지냈다. 그렇지만 둘 다 퇴직한 이후에는 나보다 너댓 살 연배이니 어김없이 형이라 부른다. 자주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몇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시공간이 흘렀지만 마음의 거리는 웬만한 친인척보다 가깝다. 왜 그럴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꺼번에 다 얘기하면 재미없고, 암튼 얼마 전에 전화가 왔는데 태백서 강릉으로 이사를 했단다. 몇 년 되었다고. 그러면서 춘천에 쳐들어오겠다고 하면서 통화를 끊었는데 한두 달 지났을까, 그래 마침 잘됐다 싶어 연락해서 춘천에 안 오니 내가 쳐들어가겠다 하고 바로 당일 그렇게 강릉으로 탈출하게 되었다. 본 지 10년 정도 됐을까 어찌나 반기고 좋아하던지 강릉에서 최고 맛집이라는 일식집을 데리고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며 많은 얘기와 웃음으로 짧은 밤을 보내고, 벚꽃 피는 시즌이 오면 춘천에 놀러 오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1%도 가식이 없는 100% 순수한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라고 거기에 사는 지인들이 말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일치하는 벗이었다.
이 분과의 인연이 유별한 것은 스페인에서의 어떤 해프닝 때문이다. 2006년 해외연수 시 우리 단체는 이른 저녁을 먹고 호텔에 투숙하였었다. 스페인의 어느 한 호텔이었는데 시간도 많으니 어디 산책이나 하자고 나섰다. 스페인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말라까이 해변이 멀지 않아 택시를 타고 그곳에 가서 한참을 즐기고 놀다가 날이 어두워져 숙소로 돌아가자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호텔 이름을 모르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나왔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랴! 정말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며 겁이 덜컹 나는 것이다. 숙소를 못 찾으면 노숙을 하든 뭐를 하든 어떻게 하룻밤이야 보내겠지만 주최측에 문제가 생기고 난리가 나며 특히, 상급 기관의 그 서슬 시퍼런 문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보다도 망신살! 강원도 망신도 이런 촌스럽고 쪽팔리는 망신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는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멘붕에 빠져있는데 택시 기사가 어느 주유소에 들르더니 직원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는 길을 가는데 갑자기 옆에 우리 숙소가 보인다. 순간 “저기요! 저기......” 아! 살았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이 일로 우리 두 사람은 그 이후 만나면 이 얘기로 심심치가 않다. ‘그러게 말라까이는 뭘라꼬 갔노?’ 하면서……. 이번에도 그 얘기로 한참을 웃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인연이 지속됐을까?
강릉에서의 통쾌한 해방감을 즐긴 하룻밤을 뒤로하고 춘천으로 오는 길, 창밖의 모습은 떠날 때와 다름없었지만 내 마음의 날씨는 어느새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그것은 결코 영원한 도피나 단절은 아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잠시 늦춰주는 달콤한 휴식이자, 꽉 막힌 방안을 신선한 바람으로 환기시키는 상쾌함 같은 것이었다.
단 하루, 일상의 궤도에서 한 걸음 걸어 나와 나의 삶을 바라보니, 아내와의 다툼 역시 헛웃음이 날 만큼 작고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던 그 지루한 일상이, 사실은 언제 돌아와도 나를 편안하게 품어주는 가장 따뜻하고 안락한 보금자리였음을 집 밖을 벗어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집에 들어서며 며칠 만에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머쓱한 웃음이 먼저 새어 나왔다. 길지 않은 이번 일탈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답답하고 지루하게만 여겼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 준 넉넉한 마음의 여유였다. 일상으로 다시 유쾌하게 돌아가기 위한 멋진 쉼표, 그것이 바로 탈출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