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金裕貞). 그 이름 세 글자를 입 안에 머금으면, 춘천 신동면 증리(甑里), 즉 실레마을의 산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알싸한 생강나무 꽃내음이 먼저 코끝을 스친다. 춘천의 산하가 빚어낸 가장 아린 보석이자, 한국 문학사가 품은 가장 찬란한 단명(短命)의 천재. 그가 실레마을의 굽이진 길목마다 뿌려놓은 문장들은 이제 단순한 소설을 넘어 춘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되었다. 그가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김유정문학촌'의 툇마루에 앉아,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미워하며 기록했던 인간사(人間事)를 되짚어 본다.실레마을은 지형이 마치 떡시루처럼 아늑하게 에워싸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시루 안에서 김유정의 문학은 발효되었고, 그 발효의 주된 효모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고향을 향한 지독한 애증이었다. 문학촌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진정한 김유정의 문학은 박제된 가옥 안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생가를 둘러싼 금병산(錦屛山) 능선이며, 점순이가 나를 밀어 넘어뜨리던 그 알싸한 동백꽃(생강나무꽃) 덤불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김유정에게 고향 춘천과 세상은 따스한 안식처만은 아니었다. 당대 명문가였던 집안의 몰락을 한 마디 못하고 지켜보아야 했던 청년 유정에게 실레마을과 세상은 폐결핵과 치질이라는 육체적 고통, 그리고 짝사랑의 열병을 견뎌내야 했던 형벌의 현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비관이나 허무로 치환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마을 사람들의 투박한 사투리와 익살스러운 행동 속에 숨겨진 생명력을 포착하였다. 그가 구축한 문학적 성과는 바로 이 '고통의 승화'라는 주춧돌 위에 세워진 것이다.김유정 소설의 정수는 단연 해학에 있다. 그의 문장은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독자를 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낄낄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 웃음의 끝맛은 언제나 쓰다. 《봄·봄》의 어수룩한 '나'가 장인어른에게 수염을 잡히며 혼례를 구걸하는 장면이나,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닭싸움을 붙이며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은 겉보기에 더없이 천진난만한 농촌의 풍경이다.하지만 그 웃음의 장막을 걷어내면 일제강점기 농촌의 참혹한 현실이 민낯을 내민다. 장인은 데릴사위라는 명목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교활한 지주이며, 점순이와 나의 갈등 이면에는 소작인과 마름이라는 계급적 수직관계가 복선처럼 깔려 있다. 김유정은 이 비참한 현실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대신, 인물들의 모자라고 모난 행동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이것은 현실에 짓눌리지 않으려는 우리네 민중의 강인한 낙천성이자, 작가 김유정이 세상을 바라보던 따뜻하고도 예리한 시선이었다.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상징하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동백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붉은 동백이 아닌, 춘천의 산기슭에 흐드러지게 피는 노란 생강나무꽃. 김유정은 왜 굳이 이 꽃을 '동백'이라 불렀으며, 그 향기를 '알싸하고도 향긋한' 것으로 묘사했는가.그에게 노란 동백꽃은 청춘의 미숙함과 생명력이 뒤섞인 색채였다. 《동백꽃》의 결말에서 나와 점순이가 한데 뒤섞여 넘어진 곳도 바로 이 꽃 더미 안이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라는 문장은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관능적이면서도 순수한 절정의 순간을 포착한 문장으로 손꼽힌다. 그는 춘천의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쓰지 않고, 인물의 심상과 사건의 전개를 추동하는 생명체로 격상시켰다.해학의 밝은 면 뒤에는 《만무방》이나 《소낙비》와 같은 어둡고 습한 세계가 공존한다. 김유정은 실레마을의 실업자들과 노름꾼, 몸을 팔아야 하는 여인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벼를 훔치는 도둑이 알고 보니 그 논을 경작한 소작농이었다는 《만무방》의 역설은, 열심히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식민지 농촌의 구조적 모순을 이보다 더 강력하게 웅변할 수 없다.그의 문체는 구어체의 생동감이 넘쳐난다. 판소리의 사설처럼 리듬감 있으며, 토속적인 어휘들은 문장 곳곳에서 생선처럼 펄떡인다. 이는 그가 관념적인 지식인에 머물지 않고, 마을 사람들과 섞여 '야학'을 열고 '금병의숙'을 세워 그들의 언어와 삶 속에 깊숙이 침잠했기에 가능한 성취였다. 김유정문학촌을 거닐다 보면 그가 썼던 투박한 단어들이 춘천의 바람을 타고 귓가에 맴도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김유정은 1937년,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고독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마지막 편지에 "닭 삼십 마리만 고아 먹으면 나을 것 같다"라는 애처로운 소망을 적었으나, 끝내 그 소박한 꿈마저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문장들은 춘천의 산하를 지탱하는 정신적 뿌리가 되어, 매년 봄이면 노란 생강나무꽃으로 다시 피어난다.김유정문학촌은 단순히 한 작가를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가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해학의 정신을 동시대 사람들에게 전하는 거대한 문학적 위로의 성스러운 곳이다. 그러므로 춘천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곧 김유정의 문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오늘도 실레마을의 고갯길을 넘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노란 동백꽃 향기를 품은 그 알싸한 웃음과 함께.

허준구
마음을 열어 가슴에 피어나는 꽃문장을 조각하는 허준구입니다.
수필(2)
1995년 전국 최초로 ‘문화 도시’로 선정되면서 춘천은 이름과 실재가 일치하는 문화 도시로 자리매김의 주초석(柱礎石)을 놓았다. 춘천이 문화 도시로 가는 여정을 소급하면, 소설가 김유정도 문화 도시로 이행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춘천은 높은 산으로 둘러친 전형적인 분지 형태이다. 춘천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화악산(1,468m)이 가장 높고 이 산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용화산(878m) 청평산(779m) 가리산( 1051m) 대룡산(899m)이 이어지고, 남쪽으로 금병산(652m) 좌방산(502m)이 이어지고, 서쪽으로 삼악산(654m) 계관산(730m) 북배산(867m) 가덕산(858m) 몽덕산(690m)이 원형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북동쪽이 구릉을 이루며 서남쪽으로 완만하게 낮아지며 들판을 형성하고, 이 사이로 소양강과 자양강이 동북쪽으로부터 흘러와 서남쪽을 관통하며 신연강을 이루고 서쪽으로 흐른다. 이러한 지형 특징으로 인해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춘천은 국가의 안위와 사직을 보존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의 고종은 춘천에 궁을 짓기로 마음먹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이러한 배경 아래 조성된 궁이 춘천이궁이다. 이궁이란, 임금이 변고나 뜻하지 않은 일이 있을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세운 궁을 말한다. 춘천에 이궁이 세워지고 이궁으로 춘천은 도호부에서 지금의 직할시 개념인 유수부로 승격하였고, 이를 계기로 1896년 강원도 관찰부로 승격하면서 강원도 도청 소재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유정은 시대가 급변하는 대한제국기의 끝자락인 1908년 춘천 실레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일제에 1905년 외교권을 빼앗기고 1907년 군대마저 해산되는 과정을 겪으며 일제강점기란 불행한 역사의 중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고, 이른 나이에 조실부모하여 고아가 되었고, 형의 가산 탕진으로 넉넉함 대신에 뼈저린 가난을 경험해야 했다. 서울에서 만난 첫사랑이자 끝 사랑이 되어버린 조선의 명창 박녹주와의 만남도 알곡은 한 톨 없이 쭉정이만 남은 짝사랑이었다. 김유정에게 위로는 글쓰기에서만 가능했다. 김유정의 소설에는 한학(漢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 않는다. 그 당시 보통 사람이 쓰는 말이자 대화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까닭에 그의 소설에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보통 사람과 하층민의 모습, 현실 그대로의 풍경, 당대의 춘천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토속어로 이루어졌다. 김유정의 만년 삶은 여러모로 참혹했다. 늑막염(肋膜炎)과 결핵으로 이어지는 병고와 경제적 무력은 그를 사지로 몰아넣었고 구인회를 중심으로 함께 했던 이상이나 절친 안회남을 제외하면 교류하던 문사도 없었다. 김유정은 29세란 젊은 날에 생을 마감하고 우리의 곁에서 떠난 듯 보였다. 춘천은 전형적인 고립형 분지로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고립형 분지 사이로 소양강과 자양강이 도심을 관통하며 흐르다가 신영강으로 합류한다. 이러한 지형 특색으로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에서 수계(水界)로 평양에 이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하였다. 춘천의 지리적 특성은 1960년대에 이르러 댐 건설로 이어졌다. 1965년 춘천댐이 완공되고 1967년에 의암댐이 준공되고 1973년에 소양강댐이 완공되면서 물의 도시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의암댐으로 만들어진 의암호수는 춘천 도심에 있었고 1968년에 거대한 호수로 변하였다. 의암호는 너비 5㎞, 길이 약 8㎞, 면적 17㎢에 이르는 거대한 인공 호수로 여의도 면적의 약 6배에 해당하며, 캠프페이지 면적의 약 12배에 해당하는 크기다. 의암호는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언론에 보도가 이어졌으며 ‘호반의 도시’로 중앙지에 소개되었다. 이 해가 1968년으로 의암댐 근처 의암호 가에 ‘김유정문인비’가 세워졌다. 의암호 담수는 호반의 도시에 걸맞은 인물로 김유정을 소환했고, 3년 뒤인 1971년에 춘천고 미술부가 주축이 되어 라인강 로렐라이 언덕의 인어상을 본뜬 의암호 인어상이 등장했다. 1968년 김유정문인비 제막식에 김유정의 첫사랑이자 끝 사랑인 박녹주 명창을 초대했다. 그러나 박녹주 명창은 참석하지 않았고 다만 ‘김유정이 이렇게 유명해질 줄 알았으면 사랑을 받아줄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김유정은 국어 교과서에 소설이 실리며 유명세를 받기도 하고 지역 언론에 면면히 주목받으며 이름이 세상에 전파되었다. 김유정이 세상에 더욱 알려지게 된 계기는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갖춘 김유정문학촌이 2002년 8월 6일 개관하면서부터다. 이러한 기세는 2004년 12월 1일 한국 철도 최초로 인물명을 딴 김유정역을 탄생시켰고, 2012년 12월 21일 수도권 전철인 경춘선 개통으로 새 역사(驛舍)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새 역사는 전통 한옥 형태로 지어졌으며 역명판과 행선판이 수도권 전철역 가운데 유일하게 궁서체로 표기되어 있어 토속어 중심의 김유정 소설과도 맥이 닿아 있기도 하다. 이로부터 남이섬과 더불어 일 년 방문객이 백만이 넘는 획기적인 문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였다. 김유정 소설가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지역적 특성이 현대에 이르러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인가? 그가 남긴 대표 소설은 봄봄과 동백꽃이다. 두 대표 소설이 춘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소설 제목 동백꽃은 영서 지역에서 자생하는 생강나무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어서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 지역 특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을 기반으로 김유정만이 써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큰 것이리라. 춘천이 문화 도시이자 문학 도시로 나아가는 데 있어 김유정은 어느 작가보다 주요하고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김유정 소설가가 춘천을 중심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과정에서 의암댐 담수에 맞추어 세워진 김유정문인비는 춘천 지역 문인에게 있어 성지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김유정문인비가 세워진 46번 국도는 춘천에서 서울로 가는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지금도 46번 국도를 가꾸면서 1970년대 심어놓은 벚나무는 아름드리로 남아 구간 구간 아직도 벚꽃을 피운다. 김유정문인비 곁 벚나무 또한 이때 심었는데, 만약 벚나무 대신 이 구역만큼은 생강나무(동백나무)로 심었으면 하는 아쉬운 바람을 하곤 한다. 만약 김유정문인비를 세우던 1968년 명창 박녹주가 참석했다면 어떠했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했던 김유정은 저 하늘에서 함박웃음 지으며 다 못한 연정의 짐을 내려놓았을까? 지금 한 창 꽃망울을 머금고 박녹주 명창이 찾아오는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을까! 이번 주말에 화사하게 핀 벚꽃을 구경하러 46번 옛 경춘국도에 나들이 가야겠다.

